빨간 양철지붕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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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오병욱
• 출판사 : 뜨인돌
• 가격 : 12,000원
• 책꼴/쪽수 :
140x225, 296쪽
• 펴낸날 : 2005-05-17
• ISBN : 9788958071327
• 십진분류 : 문학 > 한국문학 (810)
• 도서상태 : 정상
• 추천기관 :
중학교 교과서에 수록
저자소개
지은이 : 오병욱
1959년 대구 삼덕동에서 태어나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 서양화과를 새로 생긴 미술이론전공으로 졸업했다. 처음부터 오로지 작가로서의 정신재무장을 염두에 두었기에 작가를 명민한 이론가로 기대하는 여러 선생님과 선배들이 못내 부담스러웠다. 강남구 청담동에 갤러리 <서미>가 처음 생길 때부터 약 3년간 큐레이터로 일한 저자는 작가로서의 꿈을 접은 채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며, 오후에 출근해도 되는 공인 받은 게으름뱅이 큐레이터로 밤에는 인근에 있던 선후배 작업실을 돌아다니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몸이 근질거려 주로 당구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3그러다 삶과 예술을 한데 묶어 화해시키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으리라는 두려움에 1990년 5월에 할머니 혼자 사시던 경북 상주 시골집으로 내려가 지금까지 오래된 빨간 양철지붕 집에서 아내랑 아이랑 살고 있다. 집안에 있는 텃밭을 겨우 가꾸고, 낚시를 배웠고, 나무를 좋아하게 되어 목공일에 재미를 붙여가고 있는 중이다. 1993년 갤러리 <서미>에서 ‘눈 덮인 산’을 주제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고 1994년 이후 앙가쥬망 동인전에 여러 해 출품하게 되었다. 모든 공모전, 단체전, 그룹전 모조리 피해 다니다가 드디어 꼬임에 넘어간 것이다. 1996년 갤러리 <서미>에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주제로 세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1998년 상주 인근을 휩쓴 수해로 공검면 중소리 폐교작업실이 하룻밤에 사라지고 박영택 선생이 주선하던 인사동 개인전이 취소되었다. 2001년 대구 공산갤러리에서 바다를 주제로 네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학고제 화랑의 ‘사불산 윤필암’전에 출품했다. 2004년 스타타워갤러리에서 바다그림만으로 다섯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낙동강에서 200미터쯤 떨어진 교실 세 개짜리 폐교로 아침마다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들고 열심히 출근하는 중이다.
편집자 추천글
1. 한 화가가 들려주는 자연 교향악
소풍 나온 듯 15년을 살다!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는 잘나가는 강남의 큐레이터에서 어느 날 돌연 할머니가 사시는 경북 상주의 빨간 양철지붕 집으로 내려가 작품 활동을 하게 된 저자가 15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겪은 소소한 일상과 자연을 통한 사유를 화가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으로 그림을 그리듯 아름답게 써내려간 매혹적인 산문집이다.
한여름 소나기가 후두둑 떨어지는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 일어나는 일상, 시시때때로 모습을 바꾸는 자연의 빛깔과 향기, 어느 날 찾아온 반가운 손님 딱새 이야기, 구수하고 정겨운 시골 이웃의 모습, 작업실인 폐교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2년간의 작업들을 고스란히 떠내려 보내야 했던 일, 신비주의자로서 삶과 그림 사이에서 고뇌했던 젊은 시절, 그리고 애틋하고 그리운 유년의 기억들이 세련된 언어들로 한 편의 시처럼 펼쳐진다.
2. 그림을 살고 싶었고, 시를 살고 싶었던 화가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2004년‘스타타워 갤러리’에서 다섯 번째 전시회를 연 화가 오병욱은 한때 신비주의자였다. 온몸으로 예술을 살고 싶었던 그는 시인이 되기 위해 시론을 공부한다. 시를 통해 내면의 눈을 뜨고 독서와 경험, 사색과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그는 몇 년 동안 거의 매일 밤 끊임없이 고민하며 쓰고 지우기를 거듭했었다. 하지만 기록에 급급해 현재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시 창작에 염증을 느끼곤 냉랭한 관찰자보다는 뜨거운 행동가가 되리라 마음먹고 그동안 썼던 시를 모두 불태워 버린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고, 또 주변의 기대 속에서 이론가, 큐레이터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한때 구름 속을 날아다니던 신비주의자의 날개가 꺾여 버린 것이다. 일상을 한없이 겉돌던 그는 결국 삶과 예술을 화해시키지 못한 채, 도망치듯이 상주로 내려간다.
한동안 일부러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그림도 그리지 않고 그저 돌담을 새로 쌓고, 웅덩이를 쳐내고, 고기를 새로 잡아넣었으며 무너진 굴뚝을 세우고 집을 수리하는 일에 시간을 보낸다. 때때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마을 주변을 산책하고, 냇가에서 조약돌을 좁고 길에 핀 들꽃을 꺾고, 달이 좋은 밤 마당을 서성거리고, 눈발 송송 날리는 작은 길을 걷는다.
그러나 그 사이에 그는 풀꽃을 자세히 볼 수 있고 되고, 매미허물을 조심스럽게 만질 수 있게 되며, 거미줄이 완성되어 가는 모양을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게 된다. 반짝이는 자연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 작가는 분노에 쌓였던, 행동하지 못했던, 예술을 살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과 화해하게 된다.
3. 일상에서 발견한 설렘. 반짝임 그리고 그리움
저자의 뛰어난 문장은 이미 미술계에선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에 그동안 간직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다.
빼어난 문학적 감수성과 정교하게 날이 선 명징한 언어들로 완전무장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상에서 발견한 설렘, 반짝임 그리고 그리움이다.
“뽀얀 간유리 밖으로 반짝이며 움직이는 게 뭔가 싶어서 창문을 막 열어젖힌 참이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눈 녹은 물이 돌담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에 영롱한 구슬조각이 이리 튀고 저리 튀어 황홀한 봄날 아침이다. 고드름 조각이 철컥철컥 떨어진 주변이 벌써 푸릇푸릇하다. 눈 녹은 물은 참 맑기도 하지. 초봄에 이렇게 큰 눈이 오다니. 저 눈 녹은 물이 흘러가는 속도로 봄이 다시 다가오는 것이리라. 그래, 봄 눈 녹듯이, 그저 봄 눈 녹듯이 그렇게….”
- ‘폭설’ 중에서
그의 글엔 지친 일상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설렘이 있다. 녹아내리는 눈 속에서, 햇살이 눈부신 기찻길 옆 플랫폼에서, 그리고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누군가가 기다릴 거 같은,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두근거림을 전해준다.
“살구꽃이 아직 채 피지도 않았는데 벌들은 벌써 급하다. 마구 날개를 휘저어 바쁘게 날아다니면서 빨리 꽃이 열리라고 주문을 외고 마술을 건다. 어쩌다 바람이 불어 하얀 꽃잎이 눈보라처럼 휘날리면 나는 그만 절망적인 심정이 되고 만다. 세상 전체가 한 바탕 꿈처럼 ‘쨍’ 하니 깨어져 버릴 것만 같다. 그렇지 않아도 성긴 꽃그늘로 발에 춤추는 꽃잎 그림자. 어디를 밟고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땅 디디기도 송구하다. 여기까진 어떻게 왔나 뒤돌아보면 지나온 발자국이 새로 꽃잎에 묻히고 있다. 벚꽃 아래 우산을 쓰고 걸어보지도 못하고 또 올해도 봄날은 그냥 가는가.“
- ‘자연의 빛깔, 자연의 향기에 빠져들다’ 중에서
흐드러지게 핀 살구꽃, 감나무에 와닿는 바람소리, 불붙은 호랑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산불 등 그는 정겨운 고향 마을의 모습을 독자들의 눈앞에 하나하나씩 펼쳐놓는다.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소리까지도 생생하게 형상화하여 작은 나뭇잎 하나까지도 가까이에서 숨을 쉬는 듯 느껴진다. 그는 글 속에서 자연은 하나하나 의미를 갖고 반짝이고 있다.
“갑자기 우리가 쓴 우산이 뒤집어졌을 때가 생각나 혼자 웃었습니다. 비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마주보고 웃던 그날이 언제였지요? 가지런히 빛나던 그 하얀 이를 차갑고 매끄러운 그 창백한 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같이 빗속에 간간이 바람이 섞여 보는 날이면 일부러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봅니다. 어느 순간에 아득히 잊혀져 가던 그날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바람에 혼자서 놀라기도 한답니다. 시간은 저기 저 강물처럼 가끔씩은 소용돌이도 치고 제자리에서 맴돌기도 하는 걸까요? 제 가슴속에서 쉬지 않고 맴도는 이 그리움처럼 말입니다.”
- “비 오는 저녁 강가에서” 중에서
지우개 달린 몽당연필, 오래된 철 대문, 수돗가의 사기요강을 보며 우산을 쓰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저자는 불현듯 지키지 못한 약속을, 망설이던 맹세를,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떠올린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애틋한 그리움이 책 속에 깊이 배어 있다.
5. 추천의 글
- 김병종(화가, 서울대 교수, <김병종의 화첩기행>의 저자)
내가 아는 오병욱은 특별한 귀재이다. 그는 화가이기 전에 시인이고 철학자이며 사진가이고 음악가이자 일찍부터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 머무르면서 자연의 언어와 빛깔 그리고 자연의 냄새와 소리를 익힌 사람이다. 그는 도시인이 못 듣는 소리를 듣고 도시인이 놓쳐버린 색채를 붙잡는다. 바로 그 소리와 색채와 빛깔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고행의 배낭을 꾸리기도 하는데 오병욱은 아예 재가승처럼 산마을에 눌러앉아 좀체 하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린 그의 책에서 출렁이는 바다와 불타는 저녁노을을 볼 수 있고 나뭇잎에 떨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토담집 사랑방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회색 도시에 살면서 키발을 선 채로 창밖을 보며 바다와 산과 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마다 일독을 권하고 싶다.
-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교수,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저자)
오병욱은 진정한 의미에서 도시를 떠나 도시에게 다시 반향과 반성, 눈부시고 가슴 떨리는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작가다. 그는 진정으로 자연과의 생의 조화를 추구하고 이를 체득하는 자다.
“말과 글을 버리고 온몸으로 살고 싶어” 상주로 내려온 그가 그린 그림들은 아름답고 황홀한 별과 바다였다. 그 그림은 별과 바다를 자기 눈과 마음으로 보고 안 이들의 눈에 들어와 비로소 풍경이 되는 그림이었다. 보는 이들의 가슴에 들어와 밝혀져 환하게 부서지는 별, 말과 수식을 넘어서서 그대로 하나의 감탄사로 머무는 바다그림을 보면서 그가 보낸 그 긴 시간과 세월이 이런 아름다움으로 결정화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렇게 상주에서 자연과 살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틈나는 대로 자신의 일상을 소박하고 진지하게 글로 썼다. 그의 문장이 뛰어남은 미술계가 모두 다 아는 일이지만 새삼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이니 그 진가가 그의 그림처럼 맑고 밝다.
아직도 우리 미술계에 이런 낭만과 순수를 지니면서 세속의 이해와 명망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와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미덕이 존재한다는 것이 마냥 놀랍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인심이 사나운 이 미술계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고 진정한 화가, 예술가의 삶과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소풍 나온 듯 15년을 살다!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는 잘나가는 강남의 큐레이터에서 어느 날 돌연 할머니가 사시는 경북 상주의 빨간 양철지붕 집으로 내려가 작품 활동을 하게 된 저자가 15년 동안 그곳에서 지내며 겪은 소소한 일상과 자연을 통한 사유를 화가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으로 그림을 그리듯 아름답게 써내려간 매혹적인 산문집이다.
한여름 소나기가 후두둑 떨어지는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 일어나는 일상, 시시때때로 모습을 바꾸는 자연의 빛깔과 향기, 어느 날 찾아온 반가운 손님 딱새 이야기, 구수하고 정겨운 시골 이웃의 모습, 작업실인 폐교가 물에 잠기는 바람에 2년간의 작업들을 고스란히 떠내려 보내야 했던 일, 신비주의자로서 삶과 그림 사이에서 고뇌했던 젊은 시절, 그리고 애틋하고 그리운 유년의 기억들이 세련된 언어들로 한 편의 시처럼 펼쳐진다.
2. 그림을 살고 싶었고, 시를 살고 싶었던 화가
미술계의 주목을 받으며 2004년‘스타타워 갤러리’에서 다섯 번째 전시회를 연 화가 오병욱은 한때 신비주의자였다. 온몸으로 예술을 살고 싶었던 그는 시인이 되기 위해 시론을 공부한다. 시를 통해 내면의 눈을 뜨고 독서와 경험, 사색과 글쓰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그는 몇 년 동안 거의 매일 밤 끊임없이 고민하며 쓰고 지우기를 거듭했었다. 하지만 기록에 급급해 현재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에 시 창작에 염증을 느끼곤 냉랭한 관찰자보다는 뜨거운 행동가가 되리라 마음먹고 그동안 썼던 시를 모두 불태워 버린다.
그러나 현실은 그리 녹록치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고, 또 주변의 기대 속에서 이론가, 큐레이터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한때 구름 속을 날아다니던 신비주의자의 날개가 꺾여 버린 것이다. 일상을 한없이 겉돌던 그는 결국 삶과 예술을 화해시키지 못한 채, 도망치듯이 상주로 내려간다.
한동안 일부러 책도 읽지 않고, 글도 쓰지 않고 그림도 그리지 않고 그저 돌담을 새로 쌓고, 웅덩이를 쳐내고, 고기를 새로 잡아넣었으며 무너진 굴뚝을 세우고 집을 수리하는 일에 시간을 보낸다. 때때로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마을 주변을 산책하고, 냇가에서 조약돌을 좁고 길에 핀 들꽃을 꺾고, 달이 좋은 밤 마당을 서성거리고, 눈발 송송 날리는 작은 길을 걷는다.
그러나 그 사이에 그는 풀꽃을 자세히 볼 수 있고 되고, 매미허물을 조심스럽게 만질 수 있게 되며, 거미줄이 완성되어 가는 모양을 오랫동안 지켜볼 수 있게 된다. 반짝이는 자연 속에서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 작가는 분노에 쌓였던, 행동하지 못했던, 예술을 살지 못했던 자신의 내면과 화해하게 된다.
3. 일상에서 발견한 설렘. 반짝임 그리고 그리움
저자의 뛰어난 문장은 이미 미술계에선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빨간 양철지붕 아래서>에 그동안 간직했던 문학에 대한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내고 있다.
빼어난 문학적 감수성과 정교하게 날이 선 명징한 언어들로 완전무장한 이 책을 통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일상에서 발견한 설렘, 반짝임 그리고 그리움이다.
“뽀얀 간유리 밖으로 반짝이며 움직이는 게 뭔가 싶어서 창문을 막 열어젖힌 참이었다.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눈 녹은 물이 돌담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따사로운 햇살에 영롱한 구슬조각이 이리 튀고 저리 튀어 황홀한 봄날 아침이다. 고드름 조각이 철컥철컥 떨어진 주변이 벌써 푸릇푸릇하다. 눈 녹은 물은 참 맑기도 하지. 초봄에 이렇게 큰 눈이 오다니. 저 눈 녹은 물이 흘러가는 속도로 봄이 다시 다가오는 것이리라. 그래, 봄 눈 녹듯이, 그저 봄 눈 녹듯이 그렇게….”
- ‘폭설’ 중에서
그의 글엔 지친 일상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설렘이 있다. 녹아내리는 눈 속에서, 햇살이 눈부신 기찻길 옆 플랫폼에서, 그리고 골목길 모퉁이를 돌아서면서 누군가가 기다릴 거 같은,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 같은 두근거림을 전해준다.
“살구꽃이 아직 채 피지도 않았는데 벌들은 벌써 급하다. 마구 날개를 휘저어 바쁘게 날아다니면서 빨리 꽃이 열리라고 주문을 외고 마술을 건다. 어쩌다 바람이 불어 하얀 꽃잎이 눈보라처럼 휘날리면 나는 그만 절망적인 심정이 되고 만다. 세상 전체가 한 바탕 꿈처럼 ‘쨍’ 하니 깨어져 버릴 것만 같다. 그렇지 않아도 성긴 꽃그늘로 발에 춤추는 꽃잎 그림자. 어디를 밟고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땅 디디기도 송구하다. 여기까진 어떻게 왔나 뒤돌아보면 지나온 발자국이 새로 꽃잎에 묻히고 있다. 벚꽃 아래 우산을 쓰고 걸어보지도 못하고 또 올해도 봄날은 그냥 가는가.“
- ‘자연의 빛깔, 자연의 향기에 빠져들다’ 중에서
흐드러지게 핀 살구꽃, 감나무에 와닿는 바람소리, 불붙은 호랑이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산불 등 그는 정겨운 고향 마을의 모습을 독자들의 눈앞에 하나하나씩 펼쳐놓는다.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소리까지도 생생하게 형상화하여 작은 나뭇잎 하나까지도 가까이에서 숨을 쉬는 듯 느껴진다. 그는 글 속에서 자연은 하나하나 의미를 갖고 반짝이고 있다.
“갑자기 우리가 쓴 우산이 뒤집어졌을 때가 생각나 혼자 웃었습니다. 비에 젖은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마주보고 웃던 그날이 언제였지요? 가지런히 빛나던 그 하얀 이를 차갑고 매끄러운 그 창백한 손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같이 빗속에 간간이 바람이 섞여 보는 날이면 일부러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가봅니다. 어느 순간에 아득히 잊혀져 가던 그날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바람에 혼자서 놀라기도 한답니다. 시간은 저기 저 강물처럼 가끔씩은 소용돌이도 치고 제자리에서 맴돌기도 하는 걸까요? 제 가슴속에서 쉬지 않고 맴도는 이 그리움처럼 말입니다.”
- “비 오는 저녁 강가에서” 중에서
지우개 달린 몽당연필, 오래된 철 대문, 수돗가의 사기요강을 보며 우산을 쓰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저자는 불현듯 지키지 못한 약속을, 망설이던 맹세를, 그리고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떠올린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애틋한 그리움이 책 속에 깊이 배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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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종(화가, 서울대 교수, <김병종의 화첩기행>의 저자)
내가 아는 오병욱은 특별한 귀재이다. 그는 화가이기 전에 시인이고 철학자이며 사진가이고 음악가이자 일찍부터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 머무르면서 자연의 언어와 빛깔 그리고 자연의 냄새와 소리를 익힌 사람이다. 그는 도시인이 못 듣는 소리를 듣고 도시인이 놓쳐버린 색채를 붙잡는다. 바로 그 소리와 색채와 빛깔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고행의 배낭을 꾸리기도 하는데 오병욱은 아예 재가승처럼 산마을에 눌러앉아 좀체 하산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린 그의 책에서 출렁이는 바다와 불타는 저녁노을을 볼 수 있고 나뭇잎에 떨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토담집 사랑방의 아늑함을 느낄 수 있다.
회색 도시에 살면서 키발을 선 채로 창밖을 보며 바다와 산과 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마다 일독을 권하고 싶다.
- 박영택(미술평론, 경기대교수, <예술가로 산다는 것>의 저자)
오병욱은 진정한 의미에서 도시를 떠나 도시에게 다시 반향과 반성, 눈부시고 가슴 떨리는 아름다움을 전해주는 작가다. 그는 진정으로 자연과의 생의 조화를 추구하고 이를 체득하는 자다.
“말과 글을 버리고 온몸으로 살고 싶어” 상주로 내려온 그가 그린 그림들은 아름답고 황홀한 별과 바다였다. 그 그림은 별과 바다를 자기 눈과 마음으로 보고 안 이들의 눈에 들어와 비로소 풍경이 되는 그림이었다. 보는 이들의 가슴에 들어와 밝혀져 환하게 부서지는 별, 말과 수식을 넘어서서 그대로 하나의 감탄사로 머무는 바다그림을 보면서 그가 보낸 그 긴 시간과 세월이 이런 아름다움으로 결정화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그렇게 상주에서 자연과 살면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틈나는 대로 자신의 일상을 소박하고 진지하게 글로 썼다. 그의 문장이 뛰어남은 미술계가 모두 다 아는 일이지만 새삼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이니 그 진가가 그의 그림처럼 맑고 밝다.
아직도 우리 미술계에 이런 낭만과 순수를 지니면서 세속의 이해와 명망으로부터 홀로 떨어져 나와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미덕이 존재한다는 것이 마냥 놀랍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인심이 사나운 이 미술계 사람들이 그의 글을 읽고 진정한 화가, 예술가의 삶과 행동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