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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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헤르만 헤세
• 옮긴이 : 김지선
• 출판사 : 뜨인돌
• 가격 : 12,000원
• 책꼴/쪽수 :
148x225, 284쪽
• 펴낸날 : 2006-10-28
• ISBN : 9788958071594
• 십진분류 : 문학 > 독일문학 (850)
• 도서상태 : 절판
저자소개
지은이 : 헤르만 헤세
1877년 독일 남부 칼프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인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수도원 신학교에서 도망친 뒤 탑시계 공장과 서점에서 수습사원으로 일했으며,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방랑, 자아실현, 예술가적 삶은 《수레바퀴 아래서》 《크눌프》 《데미안》 《싯다르타》 같은 주요 작품에서 두루 나타나는 헤세 문학의 큰 주제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 김지선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옮긴 책으로는 《베르트람 아저씨는 어디에?》, 《파가니니》, 《내가 읽은 책과 그림》 등이 있다.
편집자 추천글
1.『헤르만 헤세의 독서의 기술』은
지금까지 우리나라 독자들에게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던 헤세의 또 다른 면모를 흥미롭게 보여주는 아주 “독특한” 책이다. 여기서 말하는 또 다른 면모란 바로 “독서가”이자 “책벌레,” 혹은 “애서가”이자 “애서광”으로서 헤르만 헤세의 면모다.
자연을 사랑하고,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 가는 사춘기의 고통을 묘파하고, 동양 사상과 신비주의에 대한 경외감을 바탕으로 삼았던 헤르만 헤세는 위대한 작가이기 이전에 근면한 독자이며, 욕심 많은 장서가이며, 뛰어난 서평가였다.
이 책의 번역 대본은 독일 주르캄프(Suhrkamp) 출판사에서 1977년에 나온 <<책의 세계(Die Welt de B?cher)<<로, 헤세 연구의 권위자이며 주어캄프 출판사의 편집장을 역임한 폴커 미켈스(Volker Michels)가 헤세의 수많은 에세이 가운데 책과 독서에 관한 것만을 골라 편집한 책이다. 원서에는 모두 63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었으나, 이번에 나온 우리말 번역본에서는 그중 24편을 수록했다.
2. 헤르만 헤세가 말하는 ‘독서론’
「독서에 대하여 (1)」에서 헤세는 우선 독서를 단순한 심심풀이나 시간 때우기로 생각하는 독자들을 준엄하게 꾸짖는다. 애초부터 그토록 진지하지 못한 자세로 독서에 임하다 보니, 정작 독서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얻는 것은 적은 불합리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말이다. “아마 사업을 그런 식으로 하면 금방 망할 텐데.”(9쪽) 다른 일상사에서는 용의주도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정작 독서에 대해서는 느긋하다 못해 방만한 태도를 취하는 세태를 꼬집는 헤세의 위트 넘치는 반문이다.
그렇다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독서는 정신집중을 요하는 일인데, 정신을 ‘풀어놓으려고’ 책을 읽는다는 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다.”(10쪽) 헤세의 일갈이다.
그는 책에 열중하지 못하는 독자를 가리켜 ‘불량독자’라고 지칭한다. 그리고 불량독자의 해악은 바로 ‘자기 자신’에게 부당한 효과를 끼치는 데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헤세가 말하는 것은 ‘양적인 독서’가 아니라 ‘질적인 독서’다. 영화와 TV, 인터넷과 신문 등 갖가지 매체가 쏟아내는 정보의 홍수에 시달리는 오늘날의 독자들도 고개를 끄덕일 만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만약에 정말 이럴 수만 있다면, 지금 읽는 것의 한 10분의 1 가량만 읽는다고 해도, 우리 모두 열 배는 더 행복하고 풍족해지리라. 그래서 우리의 책들이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고 해도, 그 결과 우리 작가들이 열 배쯤 적게 쓴다 해도, 세상에 해가 될 일은 결코 없으리라. 아무렴, 쓰는 게 문제인가. 읽는 게 훨씬 중요하지.”(12쪽) 헤세는 이렇게 단언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다. 평생 열댓 권의 책만 끼고 살아도 진정한 독서의 맛을 깨닫는 독자들이 있다. 또 온갖 것을 다 집어삼키고 모든 것에 대해 한 마디씩 거들 줄 알지만 그 모두가 허사인 경우도 있다.”(121쪽) 또한 그는 책을 두 번, 세 번 거듭해 읽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혹시 어떤 책을 처음 읽으면서 깊은 인상을 받았거든 얼마쯤 지난 후에 꼭 다시 읽어보라. 두 번째 읽을 때 비로소 그 책의 진수를 발견하게 되고, 표면적인 것에 불과했던 긴장감이 사라지면서 글 고유의 힘과 아름다움이라 할 내면의 가치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얼마나 경이로운 경험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렇게 두 번을 즐겁게 읽은 책이라면, 비록 책값이 만만치 않을지라도 반드시 구입하도록 한다.”(167쪽)
3그런가 하면 이른바 전문가나 권위자들에 의해 강요되는 독서보다는 각자의 취향과 관심에 걸맞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한다. “최우수 도서나 최우수 작가 100선 같은 건 세상에 없다. 절대적으로 정확한 비평이란 것도 없다.”(171쪽)이다.
3. 헤르만 헤세의 ‘책에 대한 경외심’
헤세는 독서라는 행위에 앞서 책이라는 물건 자체에 대해 지극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지닌 인물이다. 작가이니 당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헤세의 경우에는 그 어느 애서가나 애서광에 비춰보아도 결코 뒤지지 않는 지극한 애정이 물씬물씬 풍겨난다. “인간이 자연에게서 거저 얻지 않고, 스스로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수많은 세계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책의 세계다.”(13쪽)
?책과의 교제?에서는 독자들을 향해 책을 낯설어하거나 어려워하지 말고 마치 친구를 사귀듯 친숙하게 지내 보라고 독려하면서, 오랜 세월 책을 읽고 또 수집해 온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자상하고도 실용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책이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마치 스포츠뉴스나 강도살인사건처럼 한동안 너도나도 읽어 대화의 소재가 되었다가 이내 잊혀지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책은 진지하고 고요히 음미하고 아껴야 할 존재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책은 그 내면의 아름다움과 힘을 활짝 열어 보여준다.”(166쪽)
4. 애서가, 혹은 애서광 헤르만 헤세
「서재 대청소」라는 에세이에서 헤세는 이사를 앞두고 무려 8일 동안에 걸쳐 수천 권의 책들이 가득 들어찬 서재를 정리했던 일을 회고하며 “이 수천 권의 책들이야말로 나의 재산목록 1호”(27쪽)라고 단언한다. 물론 책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은 헤세도 잘 알고 있다. “이런 장서는 사실 엄청난 짐이고, 그런 걸 평생 끌어안고 다닌다면 요즘 사람들은 아마 비웃을 것이다.”(32-33쪽)
그렇다면 헤세는 과연 어떤 기준을 통해 장서를 선별했을까? “(일반인들이) 독서물에 대해 갖고 있는 기준이란 ‘내용이 가벼우면서도 재미있는 책, 그리고 읽고 나서 간수해둘 필요가 전혀 없는 책’이다. 반면 우리의 원칙은 ‘가치가 없는 건 가급적 장서로 들여놓지 말고, 일단 검증된 것은 절대 내버리지 않기!’다.”(33쪽) 연이어 「독서와 장서」에서는 독서란 단순히 백 권, 천 권의 베스트셀러를 읽음으로써가 아니라 각자의 관심과 필요에 따라 책을 한 권, 한 권 읽고 간직하는 과정에서 진정으로 빛을 발한다고 주장한다.
「책과의 교제」에서는 책을 소장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은 재치 있는 말로 역설한다. “여유계층에서 소장도서가 전혀 없다면, 도자기나 양탄자가 없는 것과 똑같이 부끄러워할 일이다. 나는 부잣집 구경을 하게 되면 ‘그런데 책은 어디 두셨나요?’라고 묻곤 한다. 그리고 나보다 더 잘 사는 사람들한테는 절대 책을 빌려주지 않는다.”(168쪽) 그런가 하면 도서수집에 관해서는 이렇게 단언한다. “(도서수집이란) 극도로 섬세한 스포츠라는 정도로 얘기해둘 수 있겠다. 이는 해박한 지식과 특별한 재능을 전제로 한다. (……) 극도로 섬세한 감각을 지닌 진정한 애서가라면, 아끼는 책을 초판본으로 소장하여 읽을 때 마음속 깊이 뿌듯한 만족을 느끼게 된다.”(178-179쪽)
한 권, 한 권 공들여 모은 책으로 이루어진 장서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만족감과 자부심에 대한 헤세의 표현을 보면,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애서가임을 알 수 있다. “책을 사들고 와 처음 펼쳐들던 순간들의 자잘하고 소중한 추억을 고스란히 담은 채 한 권씩 모은 책이 어느덧 사방 벽면을 빼곡히 채우노라면, 아마 누구라도 가슴 뿌듯한 소장의 기쁨과 함께 예전에는 책을 모으는 즐거움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어질 것이다.”(183쪽)다……. 4세
5. 헤르만 헤세와 글쓰기
「작가에 대하여」와 「젊은 작가들에게 띄우는 편지」, 그리고 「글쓰기와 글」은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견해가 흥미롭게 드러나는 에세이들이다. 헤세는 작가에 대해 부당한 요구를 하는 문단이며 세상의 풍토를 한탄하는 한편, 사람들의 필적을 보면 그 내용의 진실성 여부나 심정을 어느 정도 꿰뚫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문학과 비평이라는 주제에 대한 메모」에서는 작가보다도 비평가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 현실을 꼬집으면서 “훌륭한 비평가와 하류 비평가”는 엄밀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글쓰기에 대한 헤세의 견해 역시 문학적 취향이란 사람마다 다르게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고전이나 걸작이라고 불릴 만한 뛰어난 문학작품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그런 문학작품을 창작할 수 있고 식별할 수 있는 감식안을 지닌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 등의 기본적인 전제에 의거하고 있다.
6. 헤르만 헤세와 세계 문학
이 책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세계문학 도서관?이라는 에세이다.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판단’임을 전제하고서, 자신이 이제껏 읽어보았던 세계 문학사상의 대표적인 고전들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구체적으로 ‘서재 만들기’를 시도하는 내용인데, 한 가지 눈여겨볼 점은 그가 열거하는 작품들이 단순히 그의 모국인 독일, 혹은 유럽이나 영미권의 작가에만 한정되어 있진 않다는 것이다. 즉 그는 인도의 우파니샤드, 바빌로니아의 <<길가메시 서사시>>, 중국의 <<논어>>와 <<도덕경>>, 그리고 아랍권의 <<천일야화>> 같은 불멸의 고전을 다른 유럽 작가들보다도 더 먼저 언급한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유럽문학, 특히 자신의 모국인 독일문학의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며, 유럽과 영미권 이외의 작품은 고전을 제외하면 거의 눈에 찾아보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헤세가 이 에세이를 쓴 연도가 1927년임을 상기해 보면, 그나마 이 정도로라도 ‘균형’을 맞추려 시도한 것이 제법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다.
당시에는 독일에 소개된 비(非) 유럽권 작품의 수가 무척이나 적었음은 물론이고, 헤세 자신도 <<바가바드기타>>를 비롯한 세계 각국의 훌륭한 작품들이 있음은 알고 있지만, 애석하게도 추천할 만한 번역본이 없어 안타깝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처럼 동서양 고전의 번역이 활발해진 시대에 살았더라면, 헤세의 ‘세계문학 도서관’의 작품 리스트에서 적어도 절반 이상은 유럽과 영미권 이외의 작품으로 가득 채워지지 않았을까? 이런 대담한 상상을 해 볼 수 있는 까닭은, 헤세가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문학에서도 피와 흙과 모국어가 전부는 아니어서, 그것을 넘어 인류가 있으며, 또 가장 멀고 낯선 곳에서도 고향을 발견할 가능성, 너무나 굳게 닫혀 있어 가까워질 수 없을 듯하던 것과 마음이 통해 사랑하게 될 가능성은 늘 열려 있으니 놀랍고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나는 내 인생의 전반부에 인도와의 만남을 통해, 뒤에는 중국의 정신을 접하면서 이를 깨우쳤다.”(45쪽)
어쩌면 그의 소설이 독일이나 유럽에서만 먹혀드는 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에서도 애독되고 있다는 것 역시, 그가 이처럼 ‘세계문학’에 대한 관심과 애정, 그리고 독서를 해 온 결과는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