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 컴퍼니 (세기의 작가들이 사랑한 파리 서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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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실비아 비치
• 옮긴이 : 박중서
• 출판사 : 뜨인돌
• 가격 : 13,000원
• 책꼴/쪽수 :
148x225, 360쪽
• 펴낸날 : 2007-09-05
• ISBN : 9788958071785
• 십진분류 : 문학 > 영미문학 (840)
• 도서상태 : 정상
저자소개
지은이 : 실비아 비치
1887년 미국에서 태어나, 1919년에 프랑스 파리의 레프트뱅크에 영문학 전문 서점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문을 열었다. 이후 이곳은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T. 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같은 20세기 최고의 작가들이 모여드는 사랑방 구실을 하며 명성을 얻는다. 오늘날 20세기 최고의 소설로 공인되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외설 시비로 인해 영국과 미국에서 출간 금지되자 크나큰 고생을 감수해가며 1922년에 초판본을 직접 펴내 화제를 모았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1년, 나치의 탄압으로 서점 문을 닫게 된 이후에는 파리에 머무르며 문필 및 번역 일에 종사했고, 1959년에 회고록
옮긴이 : 박중서
출판 기획 및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중서는 한국저작권센터(KCC)에서 에이전트로 일했으며, ‘책에 대한 책’ 시리즈를 기획했다. 세상에 숨어 있는 의미와 가치를 찾아 책으로 펴내고 싶은 열정으로 가득 찬 옮긴이의 역서로는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가 있다.
편집자 추천글
1. 세기의 작가들이 사랑한 서점, ‘셰익스피어 & 컴퍼니’
영화 「비포 선셋」에서 화제를 모으며, 파리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관광명소가 된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1919년 11월 파리의 뒤퓌트렝 가에 문을 열고, 2년 후인 1921년 오데옹 가로 옮긴 후 그곳에서 20여 년간 자리를 지켜온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프랑스에 미국 문학을 전파하기 위해 세워진 미국문학 전문서점이다. “셰익스피어와 그 동료들”이라는 뜻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스콧 피츠제럴드/에즈라 파운드/앙드레 지드/폴 발레리 등 20세기 문학가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서울대 영문학과 김성곤 교수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학이 아직 멋과 낭만이었던 모더니즘 시절, 문화예술의 메카 파리로 모여든 가난한 예술가들과 망명작가들을 불러모은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이 책은 바로 그 유명한 서점주인 실비아 비치가 목격한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거트루드 스타인,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같은 유명작가들의 일화들과, 당시 외설서로 낙인찍힌 『율리시스』의 출간 비사가 들어 있어 문학도들을 매료시킨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20세기 세계문학의 뒤안길을 산책하며, 문학도를 매료시킨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20세기 세계문학의 뒤안길을 산책하며, 문학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작가들의 인간적이고 사적인 모습과 조우하게 된다.”
2.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주요 내용
이 책은 1919년 말부터 1940년대 초까지 프랑스 파리에 있었던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설립자 실비아 비치(1887-1962)의 회고록이다.
미국 출신인 실비아는 어린 시절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건너온다. 그곳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된 실비아는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어른이 되어 다시 파리로 건너오고, 당시 프랑스 문단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여성 출판인 겸 서점주 아드리엔 모니에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책에 관한 일을 하고 싶었던 실비아는 서점 운영의 가능성을 점쳐 보다가 1919년, 파리의 레프트뱅크에 영문학책 전문 서점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연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열악한 경제 상황으로 영어 책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파리에서 실비아의 서점은 곧 애서가와 문인들의 쉼터 겸 사교장으로 인기를 끈다.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발레리 라르보, 쥘 로맹, 레옹 폴 파르그 같은 프랑스 작가들은 물론이고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T. 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거트루드 스타인, F. 스콧 피츠제럴드, 아치볼드 매클리시, 셔우드 앤더슨, 손튼 와일더 같은 영어권 작가들, 작곡가 에릭 사티와 조지 앤타일 역시 실비아의 단골손님 겸 친구가 된다.
단순히 서점 주인 겸 작가들의 친구로만 끝났을 수도 있었던 실비아의 운명은 1922년, 외설 시비로 영어권 국가에서는 출간이 금지되었던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세계 최초로 펴내면서 뒤바뀐다. 좌절한 조이스를 돕고 싶다는 순수한 뜻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이후 실비아는 조이스의 친구, 출판인, 후원자로서 그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
3.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출간하다
현재 세기의 작품으로 추앙받고 있는 『율리시스』, 그러나 당시에는 ‘외설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영어권 국가에서는 출간이 금지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실비아 비치는 자본도, 경험도 그리고 책을 출판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 중 어느 것 하나 갖추지 못했지만, 낙심한 조이스를 돕기 위해 『율리시스』를 직접 펴내겠다고 제안한다.
그야말로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1922년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무삭제 완전판으로 1,000부 한정본으로 말이다.”『율리시스』는 실비아의 세심한 배려 아래, 철저히 조이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조이스 자신도 『율리시스』의 3분의 1은 교정쇄에다 집필한 셈이라고 말할 정도로 교정쇄마다 새로 수정하고 추가한 문장들로 가득 찬다. 그렇게 해서 출간된『율리시스』의 앞날은 그러나 순탄치가 않았다.
『율리시스』를 구입하려는 독자들이 미국에도 많았지만, 미국 정부에서 “음란물”로 규정된 이 책이 수입되는 족족 압수, 폐기한 까닭에 실비아는 이 책을 무사히 미국으로 밀반입할 방법을 물색해야 했다. 이때 마침 그녀를 도와준 인물은, 바로 유명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그는 한 가지 계획을 내놓았고 곧 시카고에 사는 ‘바니 브레이버만’이라는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그리하여 (『율리시스』가 캐나다에서는 금서가 아니었던 덕에) 캐나다를 통해 사십여 권의 책이 밀반출됐다. 당시에는 밀주업이 기승을 부리던 때라서 주위에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고, 그로 인해 검문당할 위험이 높은 상황이었다.
4.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책으로만 접하던 세기의 작가들이 살아 숨쉬다
이 책에는 세계문학의 거장들의 사적인 면면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대표적으로 『율리시스』, 『피네간의 경야』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는 돈을 물 쓰듯이 해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녹내장으로 고생하다가 죽었다. 또 골초인 데다가 바다를 사랑하고 수영을 좋아한 앙드레 지드는 한없이 의리파여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발 벗고 나서서 여러 작가들을 소집해 서점을 일으킬 방법을 모색했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개츠비』의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 책으로 큰돈을 벌어서인지, 그 돈을 모두 써버리겠다는 기세로 아내인 젤다와 함께 몽마르트르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샴페인을 마셔 대고 거실에 놓인 쟁반에 항상 돈을 놓아두고서는 집 안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가져가게 하는 등 낭비벽이 심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찾아온 갖가지 ‘원고’ 중에는 당대에 『율리시스』와 쌍벽을 이루던 ‘외설물’ 『채털리 부인의 연인』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두 작품 역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소설가의 대표작으로 여겨지지만, 이때만 해도 사정은 전혀 달라서 그저 ‘외설물’로만 폄하되었던 것이다. 실비아 비치는 로렌스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면서도 “음란물 전문 출판사”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해 아쉽게도 이 책의 출간을 거절하고 만다.
5.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문을 닫다. 그리고 제2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실비아의 서점은 유명해졌다. 항상 단골손님과 새로운 손님으로 붐볐고, 신문과 잡지에 자주 소개되었다. 심지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의 관광객들이 탄 버스도 12번지 앞에 멈춰 서서 몇 초 동안 구경하다 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불황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 실비아 비치는 경영난으로 인해 폐업을 고려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앙드레 지드의 발의로 프랑스 문인들로 구성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후원회”가 구성되어 서점에서 정기 낭독회를 가짐으로써 다시 한 번 이 서점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앙드레 지드와 폴 발레리,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T. S.엘리엇 등, 20세기 프랑스와 영미 문단을 주도했던 위대한 작가들이 이 작은 서점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것이야말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실비아는 서점을 계속 열었다. 그런데 하루는 한 독일군 고위 장교가 커다란 회색 군용차에서 내리더니, 서점 진열장에 있던 『피네간의 경야』를 사고 싶다고 했다. 판매하는 책이 아님을 거듭 밝혔지만 독일 장교는 계속 떼를 쓰며 화를 냈고 2주 후에 그가 또다시 서점으로 찾아왔다. 진열장에 있던 책을 이미 치워버린 뒤였다. 그러자 그는 분노로 몸을 덜덜 떨면서 서점의 모든 물건을 압류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차를 타고 가버렸다.
실비아는 불과 두 시간 만에 서점의 모든 것들을 재빨리 치워버렸다. 그리고 페인트공에게 부탁해 오데옹 가 12번지에 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가게 이름도 지워버렸다. 1941년의 일이었다.
오늘날 프랑스 파리의 명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이름만 같을 뿐, 사실은 1919년 말에서 1940년대에 존재했던 ‘원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와는 가게 위치나 주인이나 운영 방식 모두가 전혀 다르다. 이름 하여 ‘제2세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고 할 수 있을 이 서점은 1950년대부터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1951년 8월, 미국인 조지 휘트먼은 파리의 레프트 뱅크에 ‘르 미스트랄’Le Mistral이라는 이름의 영어책 전문 서점을 개장해, 파리를 찾는 문학적 보헤미안들의 휴식처로 만들었다. 실비아 역시 말년에 종종 이 서점을 방문해 주인인 휘트먼과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실비아가 사망한 후에 휘트먼은 『율리시즈』 초판본을 비롯한 그녀의 장서를 인수했으며,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인 1964년 그는 실비아 비치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서점 이름을 ‘르 미스트랄’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바꾸었다. 또한 그는 실비아 비치를 기리기 위해 그의 딸 이름도 실비아 비치 휘트먼으로 했다. 1950년대에 이 서점은 헨리 밀러와 리처드 라이트를 비롯해 앨런 긴즈버그와 윌리엄 버로스 등의 비트 파 시인들이 드나들었으며, 서점 내부를 문인들의 숙박 장소로 제공해 명성을 얻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13개의 침대가 있고, 휘트먼의 말로는 무려 4만 명 이상이 그곳에서 묵고 갔다고 한다. 오늘날 이 서점은 휘트먼의 딸 실비아 비치 휘트먼이 운영 중이다. 물론 유명 및 무명 작가들의 쉼터 겸 사랑방 노릇을 한다는 기본 정신이야말로 수십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블룸스데이”라는 명칭의 유래】
매년 6월 16일,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는 조이스와 『율리시스』를 기념하는 “블룸스데이” 행사가 열린다. 이제는 단순히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의 행사가 된 바로 그 날의 명칭 역시 실비아 비치가 명명한 것이었다.
영화 「비포 선셋」에서 화제를 모으며, 파리에 가면 반드시 들러야 할 관광명소가 된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1919년 11월 파리의 뒤퓌트렝 가에 문을 열고, 2년 후인 1921년 오데옹 가로 옮긴 후 그곳에서 20여 년간 자리를 지켜온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프랑스에 미국 문학을 전파하기 위해 세워진 미국문학 전문서점이다. “셰익스피어와 그 동료들”이라는 뜻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스콧 피츠제럴드/에즈라 파운드/앙드레 지드/폴 발레리 등 20세기 문학가들의 사랑방이 되었다.
서울대 영문학과 김성곤 교수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학이 아직 멋과 낭만이었던 모더니즘 시절, 문화예술의 메카 파리로 모여든 가난한 예술가들과 망명작가들을 불러모은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이 책은 바로 그 유명한 서점주인 실비아 비치가 목격한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거트루드 스타인,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같은 유명작가들의 일화들과, 당시 외설서로 낙인찍힌 『율리시스』의 출간 비사가 들어 있어 문학도들을 매료시킨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20세기 세계문학의 뒤안길을 산책하며, 문학도를 매료시킨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20세기 세계문학의 뒤안길을 산책하며, 문학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작가들의 인간적이고 사적인 모습과 조우하게 된다.”
2. 『셰익스피어 & 컴퍼니』의 주요 내용
이 책은 1919년 말부터 1940년대 초까지 프랑스 파리에 있었던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설립자 실비아 비치(1887-1962)의 회고록이다.
미국 출신인 실비아는 어린 시절에 목사인 아버지를 따라 파리로 건너온다. 그곳의 독특한 분위기에 매료된 실비아는 본국으로 돌아갔다가 어른이 되어 다시 파리로 건너오고, 당시 프랑스 문단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여성 출판인 겸 서점주 아드리엔 모니에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책에 관한 일을 하고 싶었던 실비아는 서점 운영의 가능성을 점쳐 보다가 1919년, 파리의 레프트뱅크에 영문학책 전문 서점인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연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열악한 경제 상황으로 영어 책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던 파리에서 실비아의 서점은 곧 애서가와 문인들의 쉼터 겸 사교장으로 인기를 끈다.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발레리 라르보, 쥘 로맹, 레옹 폴 파르그 같은 프랑스 작가들은 물론이고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T. S. 엘리엇, 에즈라 파운드, 거트루드 스타인, F. 스콧 피츠제럴드, 아치볼드 매클리시, 셔우드 앤더슨, 손튼 와일더 같은 영어권 작가들, 작곡가 에릭 사티와 조지 앤타일 역시 실비아의 단골손님 겸 친구가 된다.
단순히 서점 주인 겸 작가들의 친구로만 끝났을 수도 있었던 실비아의 운명은 1922년, 외설 시비로 영어권 국가에서는 출간이 금지되었던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세계 최초로 펴내면서 뒤바뀐다. 좌절한 조이스를 돕고 싶다는 순수한 뜻에서 시작된 일이었지만, 이후 실비아는 조이스의 친구, 출판인, 후원자로서 그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
3.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출간하다
현재 세기의 작품으로 추앙받고 있는 『율리시스』, 그러나 당시에는 ‘외설물’로 낙인찍히는 바람에 영어권 국가에서는 출간이 금지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실비아 비치는 자본도, 경험도 그리고 책을 출판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 중 어느 것 하나 갖추지 못했지만, 낙심한 조이스를 돕기 위해 『율리시스』를 직접 펴내겠다고 제안한다.
그야말로 “파리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 1922년에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를 무삭제 완전판으로 1,000부 한정본으로 말이다.”『율리시스』는 실비아의 세심한 배려 아래, 철저히 조이스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진다. 조이스 자신도 『율리시스』의 3분의 1은 교정쇄에다 집필한 셈이라고 말할 정도로 교정쇄마다 새로 수정하고 추가한 문장들로 가득 찬다. 그렇게 해서 출간된『율리시스』의 앞날은 그러나 순탄치가 않았다.
『율리시스』를 구입하려는 독자들이 미국에도 많았지만, 미국 정부에서 “음란물”로 규정된 이 책이 수입되는 족족 압수, 폐기한 까닭에 실비아는 이 책을 무사히 미국으로 밀반입할 방법을 물색해야 했다. 이때 마침 그녀를 도와준 인물은, 바로 유명한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였다. 그는 한 가지 계획을 내놓았고 곧 시카고에 사는 ‘바니 브레이버만’이라는 친구를 소개해주었다. 그리하여 (『율리시스』가 캐나다에서는 금서가 아니었던 덕에) 캐나다를 통해 사십여 권의 책이 밀반출됐다. 당시에는 밀주업이 기승을 부리던 때라서 주위에 수상해 보이는 사람들이 널려 있었고, 그로 인해 검문당할 위험이 높은 상황이었다.
4.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책으로만 접하던 세기의 작가들이 살아 숨쉬다
이 책에는 세계문학의 거장들의 사적인 면면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대표적으로 『율리시스』, 『피네간의 경야』로 유명한 제임스 조이스는 돈을 물 쓰듯이 해 경제적으로 궁핍했고 녹내장으로 고생하다가 죽었다. 또 골초인 데다가 바다를 사랑하고 수영을 좋아한 앙드레 지드는 한없이 의리파여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발 벗고 나서서 여러 작가들을 소집해 서점을 일으킬 방법을 모색했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개츠비』의 F.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 책으로 큰돈을 벌어서인지, 그 돈을 모두 써버리겠다는 기세로 아내인 젤다와 함께 몽마르트르에서 엄청나게 많은 양의 샴페인을 마셔 대고 거실에 놓인 쟁반에 항상 돈을 놓아두고서는 집 안에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필요한 만큼 가져가게 하는 등 낭비벽이 심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찾아온 갖가지 ‘원고’ 중에는 당대에 『율리시스』와 쌍벽을 이루던 ‘외설물’ 『채털리 부인의 연인』도 있었다. 물론 지금은 두 작품 역시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소설가의 대표작으로 여겨지지만, 이때만 해도 사정은 전혀 달라서 그저 ‘외설물’로만 폄하되었던 것이다. 실비아 비치는 로렌스의 딱한 처지를 동정하면서도 “음란물 전문 출판사”로 낙인찍히는 것을 두려워해 아쉽게도 이 책의 출간을 거절하고 만다.
5.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문을 닫다. 그리고 제2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실비아의 서점은 유명해졌다. 항상 단골손님과 새로운 손님으로 붐볐고, 신문과 잡지에 자주 소개되었다. 심지어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사의 관광객들이 탄 버스도 12번지 앞에 멈춰 서서 몇 초 동안 구경하다 가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불황으로 인해 심각한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1930년대 중반, 실비아 비치는 경영난으로 인해 폐업을 고려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앙드레 지드의 발의로 프랑스 문인들로 구성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후원회”가 구성되어 서점에서 정기 낭독회를 가짐으로써 다시 한 번 이 서점의 이름을 널리 알린 것은 상당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앙드레 지드와 폴 발레리,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T. S.엘리엇 등, 20세기 프랑스와 영미 문단을 주도했던 위대한 작가들이 이 작은 서점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는 것이야말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실비아는 서점을 계속 열었다. 그런데 하루는 한 독일군 고위 장교가 커다란 회색 군용차에서 내리더니, 서점 진열장에 있던 『피네간의 경야』를 사고 싶다고 했다. 판매하는 책이 아님을 거듭 밝혔지만 독일 장교는 계속 떼를 쓰며 화를 냈고 2주 후에 그가 또다시 서점으로 찾아왔다. 진열장에 있던 책을 이미 치워버린 뒤였다. 그러자 그는 분노로 몸을 덜덜 떨면서 서점의 모든 물건을 압류할 것이라고 말하고는 차를 타고 가버렸다.
실비아는 불과 두 시간 만에 서점의 모든 것들을 재빨리 치워버렸다. 그리고 페인트공에게 부탁해 오데옹 가 12번지에 있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가게 이름도 지워버렸다. 1941년의 일이었다.
오늘날 프랑스 파리의 명물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이름만 같을 뿐, 사실은 1919년 말에서 1940년대에 존재했던 ‘원조’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와는 가게 위치나 주인이나 운영 방식 모두가 전혀 다르다. 이름 하여 ‘제2세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고 할 수 있을 이 서점은 1950년대부터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1951년 8월, 미국인 조지 휘트먼은 파리의 레프트 뱅크에 ‘르 미스트랄’Le Mistral이라는 이름의 영어책 전문 서점을 개장해, 파리를 찾는 문학적 보헤미안들의 휴식처로 만들었다. 실비아 역시 말년에 종종 이 서점을 방문해 주인인 휘트먼과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실비아가 사망한 후에 휘트먼은 『율리시즈』 초판본을 비롯한 그녀의 장서를 인수했으며,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인 1964년 그는 실비아 비치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서점 이름을 ‘르 미스트랄’에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바꾸었다. 또한 그는 실비아 비치를 기리기 위해 그의 딸 이름도 실비아 비치 휘트먼으로 했다. 1950년대에 이 서점은 헨리 밀러와 리처드 라이트를 비롯해 앨런 긴즈버그와 윌리엄 버로스 등의 비트 파 시인들이 드나들었으며, 서점 내부를 문인들의 숙박 장소로 제공해 명성을 얻었다. 지금도 이곳에는 13개의 침대가 있고, 휘트먼의 말로는 무려 4만 명 이상이 그곳에서 묵고 갔다고 한다. 오늘날 이 서점은 휘트먼의 딸 실비아 비치 휘트먼이 운영 중이다. 물론 유명 및 무명 작가들의 쉼터 겸 사랑방 노릇을 한다는 기본 정신이야말로 수십 년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블룸스데이”라는 명칭의 유래】
매년 6월 16일, 아일랜드의 더블린에서는 조이스와 『율리시스』를 기념하는 “블룸스데이” 행사가 열린다. 이제는 단순히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의 행사가 된 바로 그 날의 명칭 역시 실비아 비치가 명명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