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허에 떨어진 꽃잎 (VIVAVIVO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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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카롤린 필립스
• 옮긴이 : 유혜자
• 출판사 : 뜨인돌
• 가격 : 9,000원
• 책꼴/쪽수 :
152x210, 188쪽
• 펴낸날 : 2008-02-29
• ISBN : 9788958072249
• 십진분류 : 문학 > 독일문학 (850)
• 도서상태 : 정상
• 추천기관 :
[2008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청소년을 위한 좋은 책’
[2008년] 한국출판인회의 선정 ‘이달(4월)의 책’
[2009년]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2008년] 한국출판인회의 선정 ‘이달(4월)의 책’
[2009년]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저자소개
지은이 : 카롤린 필립스
1954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영문학과 역사학을 전공한 후,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청소년들의 고민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지닌 저자는 독일에서 꽤 유명한 어린이․청소년 작가다. 해외 입양아나 외국인 노동자 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많이 다루었고, 2000년에는 『커피우유와 소보로빵』으로 유네스코에서 주는 '평화와 관용의 상'을 수상했다.
옮긴이 : 유혜자
스위스 취리히에서 독일어를 공부하였다. 독일 독자들에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책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을 15년째 하고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어떤 글에 감동을 받으며 사는지 늘 궁금해하며 자란 그녀는 그런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직접 책을 찾아 소개하고 있다. 그 동안 옮긴 책으로는 「좀머 씨 이야기」, 「단순하게 살아라」, 「마법의 설탕 두 조각」 등 150여 권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고등학교 1학년인 레아는 학교 신문사에서 기자로 활약한다. 중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아기일 때 독일 부모에게 입양돼 독일에서 자란 레아는 겉만 동양인일 뿐 삶의 스타일이나 사고방식은 독일 아이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병마용 전시회를 취재한 기사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레아는 라이벌 루카의 반론 기사로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에 관심을 갖게 된다.
중국은 한때 인구가 곧 생산력이라고 믿어 출산을 장려하였으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식량 문제가 심각해지자 한 가정에 한 자녀만 낳을 수 있는 ‘1가정 1자녀 정책’을 제도화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의 농촌에서는 집안을 이어 농사를 지어야 하는 아들을 절대적으로 선호하여 여자 아이가 태어날 경우 산에 묻거나 강에 빠뜨려 익사시킨다. 이런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지만 체면과 공동체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은 서로 쉬쉬 하며 함구한다.
한편 레아의 아빠는 현직 기자로, 실타래같이 엉킨 문제를 밝혀내기로 유명해 ‘초능력 후각의 소유자’로 통한다. 병마용 발굴 현장을 취재한 경험까지 있는 아빠가 유독 중국 문제라면 회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레아는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부모가 집을 비운 어느 날, 아빠의 일기장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알고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다.
레아는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한번 마음먹으면 꼭 해내고야 마는 할머니의 도움으로 중국을 찾는다. 문화대혁명 시절 지식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옥살이를 하고 가족과 헤어져, 가족을 다시 찾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리씨의 도움으로 엄마를 찾게 되고, 자신보다 1년 먼저 태어난 언니가 있었다는 것과 그 언니의 죽음을 알게 된다. 당시 중국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엄마가 자신을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넘겨준 것은 중국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엄마가 레아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자 소극적 저항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레아는 주위에 떨어져 있는 하얀 꽃잎을 강물에 뿌리며 어느새 분노가 사라졌음을 느낀다.
중국은 한때 인구가 곧 생산력이라고 믿어 출산을 장려하였으나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 식량 문제가 심각해지자 한 가정에 한 자녀만 낳을 수 있는 ‘1가정 1자녀 정책’을 제도화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국의 농촌에서는 집안을 이어 농사를 지어야 하는 아들을 절대적으로 선호하여 여자 아이가 태어날 경우 산에 묻거나 강에 빠뜨려 익사시킨다. 이런 일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지지만 체면과 공동체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을 사람들은 서로 쉬쉬 하며 함구한다.
한편 레아의 아빠는 현직 기자로, 실타래같이 엉킨 문제를 밝혀내기로 유명해 ‘초능력 후각의 소유자’로 통한다. 병마용 발굴 현장을 취재한 경험까지 있는 아빠가 유독 중국 문제라면 회피하는 모습을 보면서 레아는 뭔가 숨겨진 비밀이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부모가 집을 비운 어느 날, 아빠의 일기장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알고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다.
레아는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알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고, 한번 마음먹으면 꼭 해내고야 마는 할머니의 도움으로 중국을 찾는다. 문화대혁명 시절 지식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옥살이를 하고 가족과 헤어져, 가족을 다시 찾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는 리씨의 도움으로 엄마를 찾게 되고, 자신보다 1년 먼저 태어난 언니가 있었다는 것과 그 언니의 죽음을 알게 된다. 당시 중국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엄마가 자신을 처음 보는 외국인에게 넘겨준 것은 중국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엄마가 레아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자 소극적 저항이었음을 알게 된다.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레아는 주위에 떨어져 있는 하얀 꽃잎을 강물에 뿌리며 어느새 분노가 사라졌음을 느낀다.
편집자 추천글
“내가 누구인지… 아프지만 알고 싶어”
- 유네스코로부터 ‘평화와 관용의 상’을 수상한 카롤린 필립스의 입양에 관한 아프고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
독일 부모에게 입양된 중국 소녀 레아.
학교 신문사의 라이벌 루카가 쓴 기사를 통해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의 비화를 알게 되고 자신 역시 사회적 요구의 희생자였음을 알게 된다. 분노로 충격에 휩싸인 레아는 진실을 알아내기로 결심하고 친엄마를 찾아 중국으로 떠난다.
독일의 저명한 어린이?청소년 작가 카롤린 필립스가 그려낸 『황허에 떨어진 꽃잎』은 중국에서 독일로 입양된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 책은 단순한(?) 입양 문제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어찌 보면 입양이라는 소재로 정체성과 용서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한 단어에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이야기를 복합적으로 연결함으로써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주제를 문학적으로도 탁월하게 이끌어냈다.
이야기는 레아가 병마용 전시회를 취재하는 데서 시작된다. 병마용이 발굴된 진시황의 무덤은 레아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다. 독일인 아빠는 병마용이 실제로 발굴될 당시 그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로, 병마용이 아니었더라면 레아의 친엄마에게서 레아를 넘겨받을 일이 결코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병마용이 지킨 진시황의 무덤과 어린 아이들이 수장된 젖은 무덤인 황허 강을 연결시켜 소설의 완성도를 높였다.
『황허에 떨어진 꽃잎』에서 중국인의 자부심이자 생활의 밑천인 황허 강은 그 명성답게 중국인들의 애환, 슬픔, 분노, 죄책감을 고스란히 떠안고 흐른다. 죽어야 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딸들, 공동체의 이익 앞에 개인을 희생시킨 가족들에 대한 레아의 분노, 레아를 만나기까지 평생 짊어져 온 엄마의 죄책감…. 작가는 꽃잎으로 상징되는 이 모든 것들을 안고 흐르는 황허를 사용해 아픔과 용서를 동시에 해결한다.
작가는 황허 강과 꽃잎이라는 중의적 소재를 사용해 공동체의 이익과 체면을 중시하는 풍토 속에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버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힘없는 중국 여인과, 버려진 채 입양되었던 소녀 레아의 좌절, 갈등, 속 깊은 포옹을 아프면서도 희망차게 그려 내고 있다.
1. 딸이라는 이유로 죽어야 할 운명에 놓인 아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출산일이 가까워오면 여자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난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식량 문제가 시급해지자 중국은 한 가정에 한 자녀만 낳으라는 ‘1가정 1자녀 정책’을 제도화한다. 딸은 시집을 가면 남의 집 사람이 되지만, 아들은며느리를 얻어 가업을 잇고 집안 노인도 돌볼 수 있으니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아들을 선호했다. ‘결혼한 딸은 엎지른 물’이라는 말까지 나돌 지경이었다.
아들을 선호하는 정도가 심해져 언제부터인가 임산부는 출산일이 가까워오면 친정으로 보내졌다. 시간이 지나면 산모는 아들을 안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기도 하고, 애가 태어나다 죽었다며 홀로 돌아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가문과 마을의 ‘체면’을 생각해 캐묻지 않는다.
레아의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이방앗간을 5대째 경영하고 있는 시아버지는 가업을 물려줄 아들을 꼭 낳아 주길 바란다며 지참금도 많이 쥐어주었다. 첫 아이는 딸. 죽을 운명을 안고 태어난 아이는 결국 친아빠의 손에 의해 황허 강에 버려진다.
작가는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가운데 삶을 마감한 어린 아이들의 무덤’인 황허와 병마용까지 두어 지키게 한 진시황의 무덤을 극명하게 대조시킴으로써 중국의 아픈 현실을 수준 높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때로는 홍수로, 때로는 가뭄으로 사람들의 삶을 힘겹게 하면서도 오랫동안 중국인의 뿌리요 강한 자부심의 상징으로 군림한 황허의 모습을, 개인의 행복과 생명은 무시한 채 표면적인 안정과 공동체의 이익에 목숨 거는 중국인들 특유의 체면 중시 문화에 빗대어 아프게 꼬집고 있다.
2. 버려진 아픔을 용서와 화해로 승화시킨,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21세기에 호부호형을 금지당하다.
고아가 아니라 버려진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레아는 진실을 알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친엄마를 만나기 위해 중국을 찾는다.
아기일 때 목에 걸고 있던 비취 목걸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만, 외지인의 방문을 반갑게 맞아주던 마을 사람들은 레아 일행의 방문 목적을 듣고는 웃음을 거두고 입을 굳게 잠근다. 목걸이의 정체를 알아본 할아버지도, 아빠라 추정되는 젊은 남자도 레아를 외면한다. 엄마는 레아를 보고 오열하지만 돌아서는 레아를 마을 어귀로 달려 나와 한 번 더 쓰다듬어 볼 뿐 딸을 반가워할 수도 딸이라 부를 수도 없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는 행방이 묘연해진다. 문제가 될까 두려워한 가족들이 엄마를 다른 데로 보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와 남동생… 일가족을 한꺼번에 찾았지만 레아는 누구에게도 마땅히 주어진 호칭을 사용할 수 없다. 처음과 같이 이번에도 버림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레아는 주위 사람들의 독려와 조언 가운데 동생 집에 머물고 있는 친엄마를 다시 만나러 간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첫 아이를 황허에 떠내려 보낸 엄마는 두 번째도 딸을 낳게 된다. 하지만 그 아이만큼은 살리고 싶어 부유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독일인 부부에게 어린 딸을 비닐봉지에 담아 보낸다. 제발 살아남기를 기대하면서. 그것이 당시 중국 사회와 가정의 압력 아래서 여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레아는 언니가 버려졌던 황허 앞에 선다. 그리고 주위에 흩뿌려져 있는 꽃잎들을 모아 황허 강에 띄운다.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고 믿었는데 어느덧 황허에 떨어진 꽃잎들은 레아의 분노까지 가져갔나 보다. 처음으로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용서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곁에서 레아를 따라 꽃잎을 흘려보낸 엄마 역시 첫 아이를 흘려보낸 후 지금껏 짊어지고 있었던 죄책감을 함께 흘려보내지 않았을까.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레아의 속 깊은 포옹은 그래서 슬프지만 아름답다.
3. 먼 나라 독일을 통해 가까운 나라 중국을 보다
“고향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이 고향이야”라고 말한 루카의 말처럼 레아에게 중국은 고향이 아니었다. 그 눈에 비친 중국의 모습은 오히려 우리가 중국을 떠올릴 때보다 더 생경하다. 그래서인지 중간중간 구체적으로 묘사된 중국의 모습이 새로운 재미를 더한다.
친엄마를 찾아 나선 엄숙한 시간 속에서도 레아는 17세 소녀답게 중국의 콜라 맛을 궁금해하고, 독일과는 달리 좁은 집에 여러 가정이 사는 중국인들의 생활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소황제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밍을 질투한다.
또한 학교 신문사에서 벌어지는 10대들만의 치열함은 비록 그 무대가 먼 독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즐겁게 읽힌다.
<황허에 떨어진 꽃잎>이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읽는 재미와 읽고 난 후의 뿌듯함을 더하는 이유다.
책 속으로
“방금 전에 네가 들은 대로야. 진시황에 대한 네 기사는 너무 단편적이었어. 엄청난 규모의 고분? 세계 8대 불가사의? 다 맞는 말이지.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만 담고 있어. 그는 성격이 난폭했고, 책을 불살라 버리기도 했어. 너네 아빠가 15년 전에 썼던 기사도 안 읽어 봤니? 거기 보면 다 나와. 아빠가 너한테 안 보여 줬어? 아빠랑 사이가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루카의 비아냥에 레아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37P
“이제는 레아에게 진실을 말하는 게 좋겠어요. 이러다가 애가 직접 알아내면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절대로 말하지 않기로 한 걸 있었어요? 레아가 어떻게 알아낸단 말이오? 아무도 모를 거요.”
잠시 후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떠났다.
레아는 이웃집 정원에 웅크리고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예상대로 비밀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것도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 더구나 아주 안 좋은 내용이라서 절대 밝히면 안 되는 비밀 말이다. 70P
“지금보다 더 큰 실망을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있지. 충분히 있을 수 있단다.”
할머니가 레아 등 뒤에 있는 창문 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진실을 알아내려면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어. 어떤 때는 차라리 모르는 게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지…. 하지만 지금의 너로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90P
노인이 아들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에게 무언가 빠르게 말하고는 비취 불사조를 보여 주었다. 그가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지,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레아는 무척 궁금했다. 그는 불사조를 빼앗아 들고 부인으로 보이는 여인에게 가서 보여 주었다.
그 순간 레아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장면이 눈앞에 벌어졌다. 불가에 서 있던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사조가 아닌 레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놀라움, 충격, 확인. 132P
레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달아나야 한다고, 어서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인이 몸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여인이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레아는 가만히 있었다. 레아가 허공에 흩어지거나 달아나 버리기라도 할까 두려운 듯 여인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그러고는 냄새를 맡으려는 것처럼 레아의 얼굴에 얼굴을 천천히 붙이며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134P
꽃잎들이 강물에 일렁이다가 물살을 따라 더 깊이 내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저승으로 가는 작고 흰 배 같았다.
레아 옆에서 엄마가 조용히 흐느꼈다. 레아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중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얀 꽃잎이 분노를 가져가고 슬픔만 남겨둔 것 같았다. 184p
- 유네스코로부터 ‘평화와 관용의 상’을 수상한 카롤린 필립스의 입양에 관한 아프고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
독일 부모에게 입양된 중국 소녀 레아.
학교 신문사의 라이벌 루카가 쓴 기사를 통해 중국의 1가정 1자녀 정책의 비화를 알게 되고 자신 역시 사회적 요구의 희생자였음을 알게 된다. 분노로 충격에 휩싸인 레아는 진실을 알아내기로 결심하고 친엄마를 찾아 중국으로 떠난다.
독일의 저명한 어린이?청소년 작가 카롤린 필립스가 그려낸 『황허에 떨어진 꽃잎』은 중국에서 독일로 입양된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 책은 단순한(?) 입양 문제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어찌 보면 입양이라는 소재로 정체성과 용서의 문제를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한 단어에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이야기를 복합적으로 연결함으로써 결코 가볍지 않은 이 주제를 문학적으로도 탁월하게 이끌어냈다.
이야기는 레아가 병마용 전시회를 취재하는 데서 시작된다. 병마용이 발굴된 진시황의 무덤은 레아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다. 독일인 아빠는 병마용이 실제로 발굴될 당시 그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로, 병마용이 아니었더라면 레아의 친엄마에게서 레아를 넘겨받을 일이 결코 없었을 것이다. 작가는 병마용이 지킨 진시황의 무덤과 어린 아이들이 수장된 젖은 무덤인 황허 강을 연결시켜 소설의 완성도를 높였다.
『황허에 떨어진 꽃잎』에서 중국인의 자부심이자 생활의 밑천인 황허 강은 그 명성답게 중국인들의 애환, 슬픔, 분노, 죄책감을 고스란히 떠안고 흐른다. 죽어야 할 운명을 안고 태어난 딸들, 공동체의 이익 앞에 개인을 희생시킨 가족들에 대한 레아의 분노, 레아를 만나기까지 평생 짊어져 온 엄마의 죄책감…. 작가는 꽃잎으로 상징되는 이 모든 것들을 안고 흐르는 황허를 사용해 아픔과 용서를 동시에 해결한다.
작가는 황허 강과 꽃잎이라는 중의적 소재를 사용해 공동체의 이익과 체면을 중시하는 풍토 속에서 아이를 살리기 위해 버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힘없는 중국 여인과, 버려진 채 입양되었던 소녀 레아의 좌절, 갈등, 속 깊은 포옹을 아프면서도 희망차게 그려 내고 있다.
1. 딸이라는 이유로 죽어야 할 운명에 놓인 아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출산일이 가까워오면 여자들이 하나둘 마을을 떠난다.
급격한 인구 증가로 식량 문제가 시급해지자 중국은 한 가정에 한 자녀만 낳으라는 ‘1가정 1자녀 정책’을 제도화한다. 딸은 시집을 가면 남의 집 사람이 되지만, 아들은며느리를 얻어 가업을 잇고 집안 노인도 돌볼 수 있으니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아들을 선호했다. ‘결혼한 딸은 엎지른 물’이라는 말까지 나돌 지경이었다.
아들을 선호하는 정도가 심해져 언제부터인가 임산부는 출산일이 가까워오면 친정으로 보내졌다. 시간이 지나면 산모는 아들을 안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기도 하고, 애가 태어나다 죽었다며 홀로 돌아오기도 한다. 사람들은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가문과 마을의 ‘체면’을 생각해 캐묻지 않는다.
레아의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종이방앗간을 5대째 경영하고 있는 시아버지는 가업을 물려줄 아들을 꼭 낳아 주길 바란다며 지참금도 많이 쥐어주었다. 첫 아이는 딸. 죽을 운명을 안고 태어난 아이는 결국 친아빠의 손에 의해 황허 강에 버려진다.
작가는 ‘아무도 지켜주지 않는 가운데 삶을 마감한 어린 아이들의 무덤’인 황허와 병마용까지 두어 지키게 한 진시황의 무덤을 극명하게 대조시킴으로써 중국의 아픈 현실을 수준 높게 그려내고 있다.
또한 때로는 홍수로, 때로는 가뭄으로 사람들의 삶을 힘겹게 하면서도 오랫동안 중국인의 뿌리요 강한 자부심의 상징으로 군림한 황허의 모습을, 개인의 행복과 생명은 무시한 채 표면적인 안정과 공동체의 이익에 목숨 거는 중국인들 특유의 체면 중시 문화에 빗대어 아프게 꼬집고 있다.
2. 버려진 아픔을 용서와 화해로 승화시킨, 슬프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21세기에 호부호형을 금지당하다.
고아가 아니라 버려진 아이였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레아는 진실을 알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친엄마를 만나기 위해 중국을 찾는다.
아기일 때 목에 걸고 있던 비취 목걸이를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지만, 외지인의 방문을 반갑게 맞아주던 마을 사람들은 레아 일행의 방문 목적을 듣고는 웃음을 거두고 입을 굳게 잠근다. 목걸이의 정체를 알아본 할아버지도, 아빠라 추정되는 젊은 남자도 레아를 외면한다. 엄마는 레아를 보고 오열하지만 돌아서는 레아를 마을 어귀로 달려 나와 한 번 더 쓰다듬어 볼 뿐 딸을 반가워할 수도 딸이라 부를 수도 없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는 행방이 묘연해진다. 문제가 될까 두려워한 가족들이 엄마를 다른 데로 보내 버린 것이다.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와 남동생… 일가족을 한꺼번에 찾았지만 레아는 누구에게도 마땅히 주어진 호칭을 사용할 수 없다. 처음과 같이 이번에도 버림받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레아는 주위 사람들의 독려와 조언 가운데 동생 집에 머물고 있는 친엄마를 다시 만나러 간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첫 아이를 황허에 떠내려 보낸 엄마는 두 번째도 딸을 낳게 된다. 하지만 그 아이만큼은 살리고 싶어 부유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독일인 부부에게 어린 딸을 비닐봉지에 담아 보낸다. 제발 살아남기를 기대하면서. 그것이 당시 중국 사회와 가정의 압력 아래서 여인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몸부림이었을 것이다.
레아는 언니가 버려졌던 황허 앞에 선다. 그리고 주위에 흩뿌려져 있는 꽃잎들을 모아 황허 강에 띄운다.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고 믿었는데 어느덧 황허에 떨어진 꽃잎들은 레아의 분노까지 가져갔나 보다. 처음으로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용서는 치유하는 힘이 있다. 곁에서 레아를 따라 꽃잎을 흘려보낸 엄마 역시 첫 아이를 흘려보낸 후 지금껏 짊어지고 있었던 죄책감을 함께 흘려보내지 않았을까.
인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레아의 속 깊은 포옹은 그래서 슬프지만 아름답다.
3. 먼 나라 독일을 통해 가까운 나라 중국을 보다
“고향은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이 고향이야”라고 말한 루카의 말처럼 레아에게 중국은 고향이 아니었다. 그 눈에 비친 중국의 모습은 오히려 우리가 중국을 떠올릴 때보다 더 생경하다. 그래서인지 중간중간 구체적으로 묘사된 중국의 모습이 새로운 재미를 더한다.
친엄마를 찾아 나선 엄숙한 시간 속에서도 레아는 17세 소녀답게 중국의 콜라 맛을 궁금해하고, 독일과는 달리 좁은 집에 여러 가정이 사는 중국인들의 생활 모습을 이상하게 생각하며, 소황제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밍을 질투한다.
또한 학교 신문사에서 벌어지는 10대들만의 치열함은 비록 그 무대가 먼 독일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일상과 크게 다르지 않아 즐겁게 읽힌다.
<황허에 떨어진 꽃잎>이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면서도 읽는 재미와 읽고 난 후의 뿌듯함을 더하는 이유다.
책 속으로
“방금 전에 네가 들은 대로야. 진시황에 대한 네 기사는 너무 단편적이었어. 엄청난 규모의 고분? 세계 8대 불가사의? 다 맞는 말이지.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만 담고 있어. 그는 성격이 난폭했고, 책을 불살라 버리기도 했어. 너네 아빠가 15년 전에 썼던 기사도 안 읽어 봤니? 거기 보면 다 나와. 아빠가 너한테 안 보여 줬어? 아빠랑 사이가 좋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루카의 비아냥에 레아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풍선처럼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37P
“이제는 레아에게 진실을 말하는 게 좋겠어요. 이러다가 애가 직접 알아내면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려고 할 거예요.”
“절대로 말하지 않기로 한 걸 있었어요? 레아가 어떻게 알아낸단 말이오? 아무도 모를 거요.”
잠시 후 두 사람이 차를 타고 떠났다.
레아는 이웃집 정원에 웅크리고 앉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예상대로 비밀이 있는 게 분명했다. 그것도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비밀…. 더구나 아주 안 좋은 내용이라서 절대 밝히면 안 되는 비밀 말이다. 70P
“지금보다 더 큰 실망을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있지. 충분히 있을 수 있단다.”
할머니가 레아 등 뒤에 있는 창문 밖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긴 채 말했다.
“진실을 알아내려면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어. 어떤 때는 차라리 모르는 게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지…. 하지만 지금의 너로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상황인지도 모르겠다.” 90P
노인이 아들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에게 무언가 빠르게 말하고는 비취 불사조를 보여 주었다. 그가 그것을 알아볼 수 있을지,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레아는 무척 궁금했다. 그는 불사조를 빼앗아 들고 부인으로 보이는 여인에게 가서 보여 주었다.
그 순간 레아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장면이 눈앞에 벌어졌다. 불가에 서 있던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사조가 아닌 레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놀라움, 충격, 확인. 132P
레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달아나야 한다고, 어서 달아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인이 몸을 만지는 것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여인이 머리를 쓰다듬는 동안 레아는 가만히 있었다. 레아가 허공에 흩어지거나 달아나 버리기라도 할까 두려운 듯 여인의 손길이 조심스러웠다. 그러고는 냄새를 맡으려는 것처럼 레아의 얼굴에 얼굴을 천천히 붙이며 숨을 길게 들이쉬었다. 134P
꽃잎들이 강물에 일렁이다가 물살을 따라 더 깊이 내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저승으로 가는 작고 흰 배 같았다.
레아 옆에서 엄마가 조용히 흐느꼈다. 레아는 엄마를 바라보았다. 중국에 온 이후 처음으로 분노가 느껴지지 않았다. 하얀 꽃잎이 분노를 가져가고 슬픔만 남겨둔 것 같았다. 184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