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성 곤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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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조복성
• 엮은이 : 황의웅
• 출판사 : 뜨인돌
• 가격 : 15,000원
• 책꼴/쪽수 :
148x210, 324쪽
• 펴낸날 : 2011-08-16
• ISBN : 9788958072577
• 십진분류 : 자연과학 > 동물학 (490)
• 도서상태 : 정상
• 추천기관 :
국립중앙도서관 추천도서 - 휴가철에 읽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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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 : 조복성
동물학자, 박물학자, 교육자. 호는 관정觀庭. 1905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출생한 그는 1924년 평양고등보통학교 졸업 후 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1930년 경성제국대학에서 예과 연구원로 근무하며 조선과학운동 등 활발한 대외활동을 펼쳤고, 1942년 중국 남경과 항주의 박물관 등에서 곤충 연구에 매진했다. 8 ․ 15 광복 이후 그는 국립과학박물관장을 지냈고, 1971년에 타계하기 전까지 고려대학교의 동물학교수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국민훈장 동백장, 학술원상 저작상, 하은생물학상 등을 수상했고 학술원회장, 한국동물학회장, 한국곤충학회 명예회장 등을 역임했다. 국내 최초로 곤충학 관련 논문 발표, 동물 6종의 학명 명명, 한국곤충연구소 설립 등의 업적으로 ‘한국의 파브르’, ‘한국곤충학의 아버지’라 불린다.
엮은이 : 황의웅
창작공방 몽비행夢飛行 대표. 곤충애호가로 『조복성 곤충기』의 사료적 가치를 깨닫고 많은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이 책의 출간 및 편저 작업에 매달렸다. 한국의 문화곤충학에 흥미를 느끼고 연구 중이다. 지은 책에 『미야자키 하야오의 세계』, 『홍가왕』, 『어린이 삼국유사·삼국사기』 등이 있다. 옮긴 책에는 『내안의 빨강머리 앤』 등이 있다.
편집자 추천글
한국 곤충학의 아버지 조복성 박사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곤충기!
곤충학이나 자연과학의 발전은 고사하고 우리의 국권을 강탈당한 채 생존권마저 심각하게 위협받던 일제 강점기. 조복성 박사는 혈혈단신 백두산과 울릉도를 포함한 한반도의 산과 들을, 그리고 만주, 몽골, 중국 대륙까지 누비며 이 땅의 곤충들을 열정적으로 채집하고 꼼꼼히 기록하며 한국 곤충학의 시원(始原)을 열고 자연과학의 근간(根幹)을 이룬 ‘한국 곤충학의 뿌리’이자 ‘한국 자연과학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이다.
『조복성 곤충기』는 조복성 박사가 이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곤충들을 한 발 한 발 발품 팔며 채집해 심혈을 기울여 기록한 살아 있는 곤충기이자 명품 자연과학서이다. 이 책이 맨 처음 출간된 지 63년이 자났고(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곤충기』라는 이름으로 발행됨), 조복성 박사가 타계한 지 올해로 꼭 40년째 되는 해이지만 이 책이 지금에도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고 그 어떤 과학서에 못지 않게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 ▷ 이 책의 차례
엮은이의 말_ 한국 자연과학사의 위대한 유산 『조복성 곤충기』
지은이의 말_ 곤충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면 인간 세상을 통찰하는 눈이 생긴다!
1장_ 최고의 미식가 이야기
하필 소똥을 즐겨먹는 별난 탐식가 | 소똥구리
가난한 학자들의 책이 얼마나 맛있기에? | 좀
썩은 동물의 사체를 먹어 치우는 엽기 미식가 | 송장벌레
내 사전에 편식이란 없다! | 파리
기름진 음식에 사족 못 쓰는 ‘돈벌레’ | 바퀴
사람을 무는 놈이 모조리 암컷인 이유 | 모기
흡혈이 숙명인 3대 명문가 | 벼룩과 이와 빈대
2장_ 최고의 싸움꾼 이야기
지구 최초의 ‘원자폭탄’ 제조자 | 노린재와 방구벌레
닌자의 독약으로도 쓰인 최강 독충은? | 가뢰와 길앞잡이
집 밖에선 무시무시한 폭군, 집 안에선 평화의 수호자 | 말벌
창해역사도 울고 갈 위풍당당한 곤충 장수들 | 장수풍뎅이와 뿔풍뎅이
사랑을 그대 턱 안에 | 장수하늘소와 사슴벌레
물속의 폭군들 납시오! | 물장군과 장구애비와 게아재비
3장_ 최고의 패셔니스타 이야기
금관을 장식했던 보석보다 귀한 옥충 | 비단벌레
할리우드 배우도 반한 남성화장의 선구자 | 사슴풍뎅이
꽃밭을 수놓는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 나비
유럽의 귀부인들을 매료시킨 수염치레곤충 | 하늘소
지팡이를 짚는 그만의 이유 | 대벌레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비단옷의 창시자 | 누에
4장_ 최고의 뮤지션 이야기
최고의 성악가가 귀가 없어 못 듣는다고? | 매미
게으르고 둔하지만 천재적인 시골악사들 | 여치와 민충이
‘천재음악가’와 ‘깡패’의 두 얼굴의 소유자 | 귀뚜라미
5장_ 최고의 스포츠선수 이야기
뛰었다 하면 10점 만점! | 방아벌레
어찌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물 위를 걷지? | 소금쟁이
송장처럼 배영을 하는 유일무이 곤충사냥꾼 | 송장헤엄치개
평영의 달인이 야바위 노름에 내몰린 기구한 사연 | 물방개
물에서 신들린 듯 춤추는 수중발레의 창시자 | 물맴이
6장_ 최고의 사회건설자 이야기
양보심과 성실함으로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집단건축술의 대가 | 꿀벌
평생 100만 개의 알을 낳는 다산의 여왕 | 개미
인공의 파괴자인가, 자연의 분해자인가? | 흰개미
7장_ 최고의 연애고수 이야기
번식을 위해서라면 남편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독부 | 사마귀
찰나의 사랑을 좇는 환상적인 공중무용가 | 하루살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찬란히 발하는 불빛 | 반딧불이
세상에서 가장 희한하고도 가장 아름다운 짝짓기 | 잠자리
혼자서도 순풍 순풍 잘 낳아요! | 진딧물
8장_ 최고의 모성애와 부성애 이야기
자기 알은 물론 남의 알까지 정성껏 돌보는 눈먼 모성애 | 집게벌레
양육은 물론 집까지 내주는 조건 없는 내리사랑 | 땅강아지
어미는 왜 아비의 등에 그토록 많은 알들을 낳을까? | 물자라
나의 곤충채집여행 이야기
생애 첫 채집여행
곤충에 미쳐 금강산을 여덟 차례나 오르내리다
여러분, 수양산에 올라 나비를 잡아요!
콜롬버스의 심정으로 신대륙 울릉도를 향하다
벽안의 채집가 얀코프스키를 관모산에서 만나다
눈으로 갓난아기를 목욕시키는 북만주 오로촌족
고난과 역경에 찬 몽강학술탐사 43일
부전고원에서 옛 스승과 만나 유년을 추억하다
나비박사 석주명과 국경지대를 누비며
벼락부자 혹은 패가망신의 길, 중국 남경의 귀뚜라미싸움
마지막 소원은 티베트의 곤충도 잡아보는 것!
▷ ▷ ▷ 본문 속으로
을유문화사에서 1948년에 출간되었던 조복성 선생의 『곤충기』 원본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기쁨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1990년대 말, 나는 이 책의 존재를 뒤늦게 알고 고서점과 헌책방 등을 이 잡듯 뒤지고 다녔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고서에 눈독 들인 도서관이나 전문 수집가들의 서고 속으로 숨어 버린 지 이미 오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별다른 기대 없이 들른 어느 고서점에서 『곤충기』와 만났다. 분명 우연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곤충을 유난히 좋아했을 뿐 아니라 몇 년 동안이나 이 책을 애타게 찾아 헤매던 나에게는 그야말로 운명처럼 느껴졌다. 금세라도 바스러질 듯한 누런 책장을 한장 한장 조심스레 넘기면서 그런 생각은 점점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이 책을 어두운 서재에서 밝은 세상으로 나오게 하자!’
조복성 선생이 국립과학박물관장을 지내던 시기에 출간한 『곤충기』는 여느 서적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곤충기’로서 8 ? 15 광복 후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도 미래를 이끌어 갈 청소년을 위해 특별히 집필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내용 또한 남다르다. 곤충에 대한 박물학적 지식이 돋보일 뿐 아니라 요즘 같으면 접하기 어려운 당대의 문화사적 맥락을 보여 주는 내용도 적잖이 담겨 있다. 숨은 진주를 발견하는 기분이란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무엇보다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후 어렵고 혼란스런 우리의 시대상을 곤충의 습성에 빗대어 위트 있게 들려주는 부분은 과연 백미라 할 만하다. 단순히 지식만을 나열한 그렇고 그런 과학서가 아니라 ‘시대를 숨 쉬는 살아 있는 책’으로, 우리나라 곤충학계의 값진 보고로 오래오래 남을 만한 책이라고 자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곤충기』에는 그동안 천대받아 온 곤충의 생태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꼼꼼하고 세밀한 필치로 그려져 있으며 페이지마다 따뜻한 숨결이 배어 있다. 한참을 읽어 가다 보면 예리한 학자의 눈 뒤로 순수한 아이의 마음이 공존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책을 처음 만난 뒤 나는 이런 매력들에 빠져 5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출간을 꿈꾸며 전전긍긍했다. 그리고 이제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뜨인돌출판사에서 조복성이란 존함 석자가 표제에 들어간 곤충기를 출간하게 되었다. 조금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조복성 선생의 서거 40주기에 맞춰 출간하게 되는 점에 나름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 「엮은이의 말」 중에서 (4~6p.)
우리나라에 사는 소똥구리 세 종류는 전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멈추지 않고 소똥을 빚는다. 열심히 일하다가 가끔 쉴 때는 소똥을 한 조각 떼어 먹기도 하는데, 마치 어린아이가 초콜릿을 먹듯 달고 맛있게 먹는다. 녀석이 똥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가만히 보고 있으면 쩝쩝거리는 소리가 실제로 귀에 들리는 듯하다.
소똥구리는 너무 무르지도 않고 너무 굳지도 않은, 겉은 꾸둑꾸둑하지만 속은 물컹물컹한 똥을 택한다. 그것을 입으로 조금씩 떼어내 앞다리로 둥그렇게 빚고 소똥더미에서 끌어내린 뒤 물구나무를 서서 가운뎃다리와 뒷다리로 제 집을 향해 굴리기 시작한다. 도중에 어떠한 장애물이 나타나도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뚝심 있게 밀고 간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다가 굴러 떨어져도 소똥만은 절대 놓지 않고 꽉 움켜쥔 채 함께 구른다. 이럴 땐 그 안에 뭔가 비밀스런 것이라도 들어 있을 것 같지만, 순수한 근로의 정신인지라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소똥을 굴릴 때는 반드시 두 마리가 함께한다. 한 마리는 거꾸로 서서 밀고 또 한 마리는 바로 서서 앞다리로 잡아당긴다. 언뜻 부부나 형제가 사이좋게 밀고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파브르의 연구에 따르면, 바로 서서 끄는 놈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날강도처럼 남의 것을 빼앗아 먹겠다고 달려든 적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그렇다면 왜 소똥구리는 이처럼 힘들여 소똥을 굴리는 걸까? 소똥구리는 6, 7월에 소똥을 넉넉히 저장해 두었다가 몹시 더운 8월이 되면 일을 멈추고 서늘한 땅굴 속으로 들어가 그것을 맛있게 먹으며 피서를 즐긴다. 그렇게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번식 준비를 하기 위해 다시 바쁘게 움직인다. 이 시기에 암컷 소똥구리는 평소 자기가 먹던 것보다 한결 맛있고 영양이 풍부한 소똥을 서양 배 모양으로 빚어 놓고는 그 뾰족한 부분에 알을 낳는다. 이듬해 3월, 드디어 알에서 깨어난 애벌레는 엄마 소똥구리가 미리 준비해 놓은 영양분이 가득한 소똥을 먹으며 자란다. 소똥구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고 있노라면 녀석의 용의주도함과 치밀한 준비성에 문득문득 놀라게 된다.
― 본문 중에서 (19~21p.)
한편 노린재보다 훨씬 가공할 만한 향내를 뿜어내는 놈도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발견되는 방구벌레(폭탄먼지벌레)다. 딱정벌레목 딱정벌레과의 이 곤충은 1862년 러시아 곤충학자인 페르디난드 모라비츠Ferdinand Ferdinandovitsch Morawitz가 학계에 처음 소개했다. 학명인 Pheropsophus jessoensis의 jessoensis는 일본의 북해도를 뜻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북해도에서 채집되었다는 기록은 아직까지 없다. 따라서 맨 처음 분류할 때 라벨 오류가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노란빛을 띤 몸에 노랑 무늬가 수놓아진 검정 바탕의 앞날개는 사실 그다지 보잘것이 없지만 놈은 뱃속에서 독가스를 만드는 신기한 기술을 갖고 있다. 녀석은 미리 만들어 놓은 독가스 폭탄을 항문 주변에 장진한 채 돌아다니다가 다른 동물이 살짝 건드리기라도 하면 한 방씩 시원스레 쏘아 댄다. 비록 몸집은 작지만 치명적인 무기를 스스로 제조해 기습적으로 적을 공격하니 방구벌레를 대적할 자가 거의 없을 정도다.
독가스는 사람의 살갗에 닿으면 냄새가 무척 고약할 뿐 아니라 살이 부어오르면서 매우 따갑다. 그러니 곤충들 사이에서는 감히 접근하기 무서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반면 농가에는 더없이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낮에는 조용히 숨어 지내다 컴컴한 밤에만 나와 먹잇감으로 해충을 골라 소탕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인류 최초로 원자폭탄을 사용해 승전을 거두었지만 곤충세계에서는 태곳 적부터 이 작은 벌레가 가공할 무기를 자유롭게 사용해 왔다. 이래도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 자부할 수 있을까? 비록 이름은 우아하지 못하지만 방구벌레가 원자폭탄 제조의 원조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 본문 중에서 (55~56p.)
지구상에 사는 생물을 통틀어 매미처럼 훌륭한 발성기를 가진 놈은 없다고들 한다. 누구나 알고 있는 바대로, 좋은 성악가가 되려면 잘 들리는 귀가 반드시 필요하다. 한데, 매미는 귀가 없어 듣지 못한다는 주장이 있다. 또 반대로, 매미는 분명 귀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잘 들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어느 주장이 맞을까?
귀가 없어 듣지 못한다는 학설은 파브르가 제기한 바 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매미들이 노래하는 나무들 근처에서 대포를 쏘았는데, 어찌된 일인지 놀라지도 않고 계속 노래를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매미에게는 귀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또 그는 수컷이 우는 것은 제멋에 겨워 우는 것일 뿐 암컷을 부르기 위한 방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암수가 모두 귀가 없다면 우는 수컷은 어떻게 자기 노래를 들을까? 파브르의 결론도 간접적인 실험에 의한 추측에 불과할 뿐 정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요컨대 이 문제는 매미의 청각기 즉, 귀가 있는지 없는지에 달렸다.
이 문제를 맨 처음 연구한 사람이 독일의 동물학자 리카르트 포겔Richard Vogel이다. 그는 오랜 연구를 통해 매미에게 귀에 해당하는 기관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밝힌 바 있다. 1921년 이래 그는 매미의 귀에 대한 논문을 여러 편 썼는데, 그 연구 결과를 종합하여 1923년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매미에게 귀가 있다고 단언했다.
포겔의 연구에 따르면, 매미의 귀는 머리에 있지 않고 배에 있다고 한다. 가슴에 늘어져 있는 2개의 뚜껑을 열면 앞을 가린 투명한 막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매미의 귀라는 것이다. 곤충학자들은 이 매미의 귀를 경막鏡膜이라 부른다. 이 경막은 매우 셈세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기 동무들의 소리는 잘 들리되 다른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파브르의 실험에서 매미들이 대포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117~118p.)
한국 곤충학의 아버지 조복성 박사가 쓴 우리나라 최초의 곤충기!
곤충기 하면 누구나 조건반사처럼 떠올리는 인물 파브르. 곤충의 생태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파브르를 떠올리고, A에서 Z까지 그에게서 답을 구하려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단행본 출판시장에는 『파브르 곤충기』가 아동용에서 청소년용, 그리고 성인용에 이르기까지 독자층을 달리하며 조금씩 외형만 달리한 채 수십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져 답습되고 있는 실정이다.
『파브르 곤충기』는 물론 세계 자연과학사에 길이 남는 위대한 걸작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곤충 연구에 있어서 지나치게 파브르를 신봉하고 교조적으로 따르다 보니 그로 인한 문제점도 적지 않다. 첫째, 곤충 연구의 다양성과 특수성이 확보되지 못한 채 다소 획일화되고 교조화되는 측면이 있다. 즉, 비슷한 곤충이라도 대륙마다 나라마다 생태와 특성 면에서 뚜렷이, 혹은 미세하게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 파브르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그런 다양성과 특수성을 간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파브르를 지나치게 신봉하고 의존하다 보면 우리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우리의 토박이 곤충들의 생태와 특성에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마치 천문학적인 제작비를 들여 제작되고 글로벌 유통망을 통해 공급되며 전 세계를 휩쓰는 할리우드 영화가 우리 한국인만의 특수한 정서를 세밀하게 터치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다. 한국인에게 깊은 정서적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진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데에는 역시 한국인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 영화가 제격인 것이다.
곤충학이나 자연과학의 발전은 고사하고 우리의 국권을 강탈당한 채 생존권마저 심각하게 위협받던 일제 강점기. 조복성 박사는 혈혈단신 백두산과 울릉도를 포함한 한반도의 산과 들을, 그리고 만주, 몽골, 중국 대륙까지 누비며 이 땅의 곤충들을 열정적으로 채집하고 꼼꼼히 기록하며 한국 곤충학의 시원(始原)을 열고 자연과학의 근간(根幹)을 이룬 ‘한국 곤충학의 뿌리’이자 ‘한국 자연과학의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이다.
『조복성 곤충기』는 조복성 박사가 이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않은 수많은 곤충들을 한 발 한 발 발품 팔며 채집해 심혈을 기울여 기록한 살아 있는 곤충기이자 명품 자연과학서이다. 이 책이 맨 처음 출간된 지 63년이 자났고(1948년 을유문화사에서 『곤충기』라는 이름으로 발행됨), 조복성 박사가 타계한 지 올해로 꼭 40년째 되는 해이지만 이 책이 지금에도 여전히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고 그 어떤 과학서에 못지 않게 돋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왜 조복성인가, 그리고 왜 『조복성 곤충기』인가?
튼실한 뿌리에서 나온 나무 둥치가 힘차게 줄기를 뻗고, 잎사귀를 키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듯 한국 곤충학과 자연과학은 ‘조복성’이라는 든든한 뿌리에서 뻗어 나와 오늘날의 제대로 된 과학과 학문으로 정립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또한 지금까지 수십 년간 이어져 오며 한국 곤충학과 자연과학의 도도한 물줄기를 만들어 온 모든 연구 성과들은 거의 예외 없이 ‘조복성’이라는 샘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복성 박사는 자신의 일생을 우리 땅의 곤충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일에 온전히 바쳤다. 그는 외국인 학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토종 곤충을 찾아내 모두 6종에 학명을 붙였는데, 그중 조흰뱀눈나비, 조복성박쥐(황금박쥐 또는 붉은박쥐) 등 4종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이후, 조복성 박사는 자신의 인생 후반부를 성균관대학교와 고려대학교에서 교육자로서 곤충학 분야의 후학을 양성하는 일에 바쳤다. 1963년에는 좀 더 체계적으로 곤충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려대학교에 한국곤충연구소도 세웠다. 이를 통해 당시까지 낙후되어 있던 우리의 자연과학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미래자원으로서 곤충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려 나갔다. 1971년 임종하기 직전, 그는 자신이 가진 전 재산과 목숨처럼 아끼던 표본, 연구 자료와 서적 등을 장학회와 교내도서관에 기증, 기탁함으로써 후진양성의 뜻을 이어가도록 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일로, 조복성 박사는 일제강점기에 여러 학자들과 함께 과학운동을 이끌었다. 도봉섭, 석주명, 정태현 등과 함께 조선박물연구회를 조직해 서적 발행, 강연회와 전람회 개최, 탐사여행 등의 활동을 통해 우리 백성들에게 과학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으며, 조선어학회와 함께 토종곤충에게 순우리말 이름을 찾아 주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곤충 이름들의 상당수가 이때 만들어졌다.
조복성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를 ‘학자 중의 학자’라 칭한다. 곤충에 미쳐 자신의 모든 삶을 곤충 연구에 바친 그의 한길인생을 가리키는 존경의 표현일 것이다. 조복성을 누구나 한국 곤충학과 자연과학을 태동시킨 아버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우리 땅에서 서식하는 우리 곤충들에 관한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38가지 이야기
이 책에는 인간보다 먼저, 아니 태곳적부터 ‘원자폭탄’을 제조해 사용해 온 방구벌레 이야기, 고대이집트에서 소똥구리가 신성시될 수밖에 없었던 심오한 이유, 인간이 그 어떤 수단으로도 파리를 완전 박멸하는 것이 불가능한 과학적, 통계학적 근거, 모성애가 지나쳐 다른 곤충의 알까지 정성껏 돌보는 못뽑이집게벌레의 웃지 못할 이야기 등 우리 땅에서 서식하는 우리 곤충들에 관한 놀랍고도 흥미진진한 38가지 이야기가 소개된다. 또 책의 후반부에는 ‘나의 곤충채집여행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조복성 박사가 이 땅 한반도와 몽골, 만주, 중국 대륙을 누비며 열정적으로 곤충채집하던 날들의 생생한 기록이 당시의 생생한 흑백사진과 함께 오롯이 담겨 있다.
『조복성 곤충기』는 곤충의 생태와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은 성인독자들이 읽기에 주제의 적절함이나 내용의 깊이 면 모두에서 부족함이 없다. 이 책은 동시에 청소년(고등학생) 독자에게도 적극 권장할 만한 책이다. 왜냐하면 1948년에 이 책이 처음 출간될 때 조복성 박사가 쓴 저자서문을 보면 청소년 독자를 염두에 두고 집필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 책은 우리나라 최초의 곤충기이면서 동시에 본격 청소년 과학서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