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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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김별
• 출판사 : 뜨인돌
• 가격 : 15,000원
• 책꼴/쪽수 :
140x195, 320쪽
• 펴낸날 : 2014-03-14
• ISBN : 9788958075110
• 십진분류 : 역사 > 지리 (980)
• 도서상태 : 정상
• 추천기관 :
여행전문지 <연합 이매진> 추천도서
저자소개
지은이 : 김별
1985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영학을 전공한 직장여성이다. 매년 금쪽같은 연차휴가를 마지막 하루까지 탈탈 털어서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중독자. 태양과 바다와 낮술을 사랑한다. 18년째 살고 있는 동네에서도 가끔 길을 잃는 길치고, 수영을 못하는 스쿠버다이버다. 익숙한 길에만 머무르는 것보다는 낯선 길 위에서 헤매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내일’과 ‘다음 생’ 중 어떤 게 먼저 올지 모른다는 마음가짐으로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에 충실한 낭만주의자이다. ‘지루하게 선명하기보다는 흐릿해도 흥미롭게’라는 노랫말처럼 살다 보면 언젠가는 흐릿하게나마 선명해질 거라 믿으며, 하루하루를 별스럽게 보내고 있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과 『세상에 이런 가족』,『서른, 우리 술로 꽃피우다』를 썼다. 달콤한 게으름과 책과 그림을 사랑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과 『세상에 이런 가족』,『서른, 우리 술로 꽃피우다』를 썼다. 달콤한 게으름과 책과 그림을 사랑하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목차
Prologue 월급쟁이 김씨, 세상에 follow를 신청하다
첫 번째 스페인 여럿이 함께, Topdeck
놓는 순간 비로소 잡히는 / 너와 내가 선택한 울타리 / 미친 척하고 20초만 / 그런 사람, 반드시 있다 /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 따로 또 같이 / 여행이 다 그런 거지 뭐 / 금녀의 미식 클럽, 소시에닷 / 무리 안에 있다는 안도 / 축구! 축구! 축구! / 그때그때 달라요 / 우리는 모두 올챙이 / I'm gonna live my life / 지구촌 시민의 덕목 / 누구도 아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 다시 처음으로
두 번째 스페인 사교적으로, Couchsurfing & Air BnB
카우치서핑과 에어비앤비 / 웰컴 투 바르셀로나 / 케린의 집 / 나의 방 / 서로에게 기대어 / 우리의 다른 하루 / 여기는 사이버 월드가 아니니까 / 소셜의 꿈 / 나를 가둔 것은 다름 아닌… / 고양이에게 배운다 / 잊을 수 없는 또르띠야 / Yes, You Can! / 바르셀로네따, 나를 안심시키다 / 마이 리얼 트립 / 한국인이세요? / 그녀는 사교성이 좋아요 / 엘 클라시코의 열기 속에서 / 순수한 선의의 회복 / 내 가방은 여전히 바르셀로나에 있어요
세 번째 스페인 공정하게, Responsible Tourism
다시, 돌아가야겠어 / 사회를 위한 여행? / 원숭이에게 질 순 없지 / You are welcome! / 라켈의 동굴 / 일단 나가자! / Placelessness /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매력적인 말 / 한 걸음 한 걸음에 깃든 의미 / No say China! / 서로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서 / 공정한 레스토랑, 낄로메뜨로 쎄로(km 0) / 첫 번째 레스토랑, 가이아 / 두 번째 레스토랑, 일렉뜨리씨닷 / 세 번째 레스토랑, 뜨리베까 / km 0 주인들의 이야기 / 작아서 더욱 빛나는 것들 / 로스앙헬레스 말라게뇨스 / ‘무엇’보다 ‘어떻게’ / 마음선물 / 약속 지키기
Epilogue @world님이 김별 님을 팔로우합니다.
첫 번째 스페인 여럿이 함께, Topdeck
놓는 순간 비로소 잡히는 / 너와 내가 선택한 울타리 / 미친 척하고 20초만 / 그런 사람, 반드시 있다 /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 따로 또 같이 / 여행이 다 그런 거지 뭐 / 금녀의 미식 클럽, 소시에닷 / 무리 안에 있다는 안도 / 축구! 축구! 축구! / 그때그때 달라요 / 우리는 모두 올챙이 / I'm gonna live my life / 지구촌 시민의 덕목 / 누구도 아니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 다시 처음으로
두 번째 스페인 사교적으로, Couchsurfing & Air BnB
카우치서핑과 에어비앤비 / 웰컴 투 바르셀로나 / 케린의 집 / 나의 방 / 서로에게 기대어 / 우리의 다른 하루 / 여기는 사이버 월드가 아니니까 / 소셜의 꿈 / 나를 가둔 것은 다름 아닌… / 고양이에게 배운다 / 잊을 수 없는 또르띠야 / Yes, You Can! / 바르셀로네따, 나를 안심시키다 / 마이 리얼 트립 / 한국인이세요? / 그녀는 사교성이 좋아요 / 엘 클라시코의 열기 속에서 / 순수한 선의의 회복 / 내 가방은 여전히 바르셀로나에 있어요
세 번째 스페인 공정하게, Responsible Tourism
다시, 돌아가야겠어 / 사회를 위한 여행? / 원숭이에게 질 순 없지 / You are welcome! / 라켈의 동굴 / 일단 나가자! / Placelessness / ‘이해할 수 없어’라는 매력적인 말 / 한 걸음 한 걸음에 깃든 의미 / No say China! / 서로의 추억을 지키기 위해서 / 공정한 레스토랑, 낄로메뜨로 쎄로(km 0) / 첫 번째 레스토랑, 가이아 / 두 번째 레스토랑, 일렉뜨리씨닷 / 세 번째 레스토랑, 뜨리베까 / km 0 주인들의 이야기 / 작아서 더욱 빛나는 것들 / 로스앙헬레스 말라게뇨스 / ‘무엇’보다 ‘어떻게’ / 마음선물 / 약속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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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추천글
여행서가 갖춰야 할 첫 번째 요건은 오직 그 책을 통해서만 접할 수 있는 뭔가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여행 장소가 스페인처럼 유명한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검색창에 ‘스페인 여행’이라는 다섯 글자만 입력해도 다 읽는 데 족히 1년은 걸릴 정보들이 좌르륵 뜨는 세상에서, 클릭 몇 번만으로 쉽게 알 수 있는 내용이 담긴 책을 굳이 돈 써 가며 읽는 사람은 없다. 절제되지 않은 개인적 감성들로 가득한 여행기 역시 독자들의 눈길을 끌기엔 역부족이다. 외형만 책일 뿐, 날것을 숙성시키는 ‘활자화 과정’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출간 종수의 급증에도 불구하고 여행서 시장이 여전히 불경기인 것은 ‘읽을 만한’ 책이 드물다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에는 세세한 정보가 없다. 바르셀로나에선 어디가 멋있고 어디가 맛있다거나, 안달루시아에선 뭐가 유명하다거나 하는 얘기들은 나오지 않는다. 마드리드에선 이래서 즐거웠고 세비야에선 저래서 행복했다는 식의 일기 같은 독백도 없다. 어차피 그런 건 네이버 지식인이 더 해박하게 설명해 주고 수많은 블로거들이 더 실감나게 전달해 준다.
대신 이 책엔 (아마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았을) 남다른 여행법이 있다. 여행에선 ‘어디로’ 못지않게 ‘어떻게’ 또한 중요하다는 것, 똑같은 장소라도 방법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는 것을 세 번의 스페인 여행을 통해 독자들에게 증명한다. 중요한 건 그 방법들을 고른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 책에 담긴 세 번의 여행은 이를테면, 하나의 테마에서 파생된 세 개의 변주곡이다. 중심 테마는 ‘소셜(social)’. 각 변주곡들의 제목인 ‘여럿이 함께’, ‘사교적으로’, ‘사회적으로’는 그 단어의 세 가지 의미에 해당한다.
이런 독특한 여행을 시도하게 된 데는 두 개의 배경이 있다. 하나는 고달픈 인간관계와 범람하는 ‘소셜 블라블라’들에 대한 회의감, 다른 하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친절한 조언이다.
“어떤 여행이라도 많든 적든 간에 나름대로의 중심 테마 같은 것이 있다.” (하루키, 『위스키 성지여행』 중)
■ ‘소셜(social)’의 의미를 찾아 떠난 세 번의 스페인
시작은 “인간관계에 대한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고민”이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결국 다 싫어졌을 때 불쑥 결심한 스페인 여행. “진짜 소셜이 뭔지 몸소 체험해 보겠다”는 야무진 결심은 ‘소셜의 사전적 의미와 여행의 일대일 대응’이라는 기발한, 그러나 약간은 무모한 시도로 이어지게 된다.
첫 번째 여행(여럿이 함께)으로 선택한 건 탑덱(Topdeck)이었다. 전용 운전기사와 가이드가 딸린 버스를 타고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는 이 다국적 버스 여행에서, 글쓴이는 전 세계에서 모인 33명의 청춘들과 함께하며 ‘따로 또 같이’의 의미를 익히고 체험한다. 때로는 신기하고 때로는 충격이었던 문화적 차이들, 한국과는 사뭇 다른 외국인들의 ‘관계 맺기’ 방식, 버스 안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주도층과 소외층, 동양의 이방인에서 출발해 ‘우리’로 섞여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들…. 그 시간 동안 그는 “소심했고 겁쟁이였고 의기소침했고 비굴했던, 그러나 또한 대범하고 용감하고 당당했던” 자기의 진짜 모습을 본다. 그리고 “여전히 덕지덕지 엉킨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좀 더 독립적이면서도 사교적인 인간으로의 변신을 꿈꾼다.
두 번째 여행(사교적으로)은 그런 희망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현지인들의 집을 숙소로 활용하는 카우치서핑과 에어비앤비. 두 가지 모두 사교적이지 못하면 시도할 수 없는 여행 방식이다. 바르셀로나의 젊은 예술가들, 직장인들, 다양한 커플들이 리퀘스트에 응답해 주었고, 그는 독특하고 기괴하고 아늑했던 호스트들의 집에 머물며 스페인의 거리와 사람들과 문화를 만끽한다. 마지막 날 현지 가게의 직원으로부터 들었던 “그녀는 사교성이 좋아요”라는 말은 글쓴이가 그 어떤 말보다도 더 듣고 싶었던 일종의 인증 멘트였고, 이제 드디어 사회를 위한 여행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 ‘사회적으로’이라는 의미에 어울리는 여행법으로 그가 선택한 건 안달루시아 공정여행이었다. 하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빈곤 국가가 아닌 유럽에서도 공정여행이 가능할까? 회사 사정 때문에 일정을 앞당겨 부랴부랴 준비도 없이 떠난 여행에서 그는 ‘세상 어디에서도 사회를 위한 공정한 여행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다. 유기농 로컬푸드로만 음식을 만드는 세비야의 ‘km 0 레스토랑’ 순례하기, 말라가의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식당 자원봉사와 기부, 멀미의 공포를 무릅쓰고 단지 ‘탄소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 대신 선택한 장거리 버스,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악마적 유혹을 끝내 이겨내고 글로벌 프랜차이즈 대신 찾아든 동네 카페들…. 숙소들 중 한곳이었던 그라나다 집시들의 동굴 마을 사끄로몬떼는 멋진 선물이자 축복이었다. 공정여행 전문여행사들도 쉽게 기획하지 못하는 스페인 공정여행에 홀로 나선 용감한 여행자를 위한.
■ 여행서, 또는 길고 긴 질문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스스로를 관찰하고 재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행 이야기가 담긴 책이 갖는, 또는 가져야 할 미덕은 자명하다. 누군가가 여행을 통해 느끼고 발견하고 깨달은 것들에 독자들이 스스로를 이입시켜 자기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 그 성패는 당연히 독자들의 공감의 크기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글쓴이는 솔직하다. 직장인으로서 느꼈던 불안, 냉소, 갈증, 회의 등을 보태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다. 여행 중의 느낌과 생각과 행동들 또한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현지에서의 에피소드와 그것을 통해 반추되는 한국에서의 에피소드가 때로는 다큐처럼, 때로는 콩트처럼 지면에 펼쳐진다. 온갖 감정들이 수시로 교차하는 그 생생한 이야기들은 글쓴이의 것인 동시에, 한국에서 21세기에 직장생활을 하는 모든 2030 세대의 것이다. 공감의 여지 또한 그만큼 크고 넓어서, 여행 에세이가 아닌 생활 에세이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글쓴이는 끝부분에서 말한다. “나는 지금, 이곳 서울에서 약속을 지키는 여행을 하고 있다”라고. 그리고 또 말한다. “이 책 어디에도 소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없으며, 내 이야기는 하나의 길고 긴 질문일 뿐이니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글쓴이의 출발과 여정과 귀로에 함께했던 독자들은 책을 덮는 바로 그 순간부터 답 찾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책을 읽는 도중에 이미 답안 작성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원래 잘 다듬어진 질문은 그 안에 반드시 정답을 품고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 본문 속으로
누군가 또 왜 스페인이냐고 묻는다면 더 이상은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그곳은 여기보다 더 뜨거울 것 같고, 그곳 사람들은 여기 사람들보다 더 따뜻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어서라고 하면 안 될까? 온기가 있는 곳을 향해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짐승처럼, 나도 어딘가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 뿐이라고. (21쪽)
여행이 주는 선물 중 가장 큰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 컬쳐 쇼크 후에 미세하게 넓어지는 ‘다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당황하고 놀라고 때로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여행에서 돌아와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조금은 변한 내 시각을 마주하게 되는 거라고요. (89쪽)
그런 위로는 좀 찌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이해하고, 다독이고, 때로는 찌질하게 위로도 해 가면서 살아야 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언젠가 얼굴도 잘 생기고 집도 부자인데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엄친아를 보며 “저 자식은 분명 고자일 거야”라고 말했던 찌질한 내 친구 녀석을 이해한다. (139쪽)
그런 것 같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인간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동등한 존재로 자신을 포지셔닝하는, 본인의 의사를 확시랗게 표현하면서도 사랑을 받는, 그런 기질을 모두에게 이해받는 그런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173쪽)
그 동안 나는 그녀와 같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서 내 모습을 본 것이었다. 볼터치를 약하게 칠한 나, 망설이는 나, 길을 잃은 나, 멍하니 앉아 있는 나, 혼자 서성이는 나, 어쩔 줄 모르는 나, 누군가 말을 걸어 주기를 바라는 나. 그런 나에게 지금은 조금 괜찮아진 내가 다가가 말을 걸어 주는 것이었다. 여기로 가 보라고, 이걸 먹어 보라고, 여행이 즐겁기를 바란다고 웃으며 말해 주는 것이었다. 투명한 통로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분주히 오가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위로받는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195쪽)
내가 선택한 숙소는 오래전부터 집시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동굴마을 사끄로몬떼에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하얀 언덕에 작은 구멍들이 뽕뽕 뚫려 있는 아름다운 마을에서 밤새 플라멩코를 추는 집시들을 보고 내가 죽기 전에 저긴 꼭 간다, 다짐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236쪽)
여행을 와서도 20년째 세비야의 골목을 지키는 바리스타가 내려 주는 에스프레소를 외면하고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찾는 나의 행동이 스페인에 사는 누군가의 추억을 없애는 데 일조하면 어쩌나,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그건 정말 큰일이었다. (265쪽)
정말 비밀스런 문이라도 연 것처럼,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에 들어간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격한 반응이었다. 우리나라 어느 작은 산골마을 식당에 푸른 눈의 금발 여자가 들어섰을 때 순이 할머니와 철수 할아버지가 잘 익은 풋고추를 된장에 찍다 놀라서 돌아본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거야, 하고 생각했다. 거긴 정말이지 현지인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고 찾아올 수도 없는 ‘오리지널 로컬 레스토랑’이었다. (271쪽)
하루살이 인맥! 이 말이 나를 놀라게 한다. 여행 기간 내내 매일 밤 함께 술을 마신 탑덱 크루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미식 경험을 선사해 준 산 세바스티안 소시에닷 멤버들,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게이 커플 쎄사르와 조셉, 그라나다에서 만난 이슬람 문화 선생님이었던 압둘, 세비야의 친절한 레스토랑 주인 뻬드로, 너무너무 귀엽고 착한 나디야. 한 명 한 명 기억해 내니 참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들인데…. (312쪽)
『스페인을 여행하는 세 가지 방법』에는 세세한 정보가 없다. 바르셀로나에선 어디가 멋있고 어디가 맛있다거나, 안달루시아에선 뭐가 유명하다거나 하는 얘기들은 나오지 않는다. 마드리드에선 이래서 즐거웠고 세비야에선 저래서 행복했다는 식의 일기 같은 독백도 없다. 어차피 그런 건 네이버 지식인이 더 해박하게 설명해 주고 수많은 블로거들이 더 실감나게 전달해 준다.
대신 이 책엔 (아마 아무도 시도해 보지 않았을) 남다른 여행법이 있다. 여행에선 ‘어디로’ 못지않게 ‘어떻게’ 또한 중요하다는 것, 똑같은 장소라도 방법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공간이 된다는 것을 세 번의 스페인 여행을 통해 독자들에게 증명한다. 중요한 건 그 방법들을 고른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 책에 담긴 세 번의 여행은 이를테면, 하나의 테마에서 파생된 세 개의 변주곡이다. 중심 테마는 ‘소셜(social)’. 각 변주곡들의 제목인 ‘여럿이 함께’, ‘사교적으로’, ‘사회적으로’는 그 단어의 세 가지 의미에 해당한다.
이런 독특한 여행을 시도하게 된 데는 두 개의 배경이 있다. 하나는 고달픈 인간관계와 범람하는 ‘소셜 블라블라’들에 대한 회의감, 다른 하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친절한 조언이다.
“어떤 여행이라도 많든 적든 간에 나름대로의 중심 테마 같은 것이 있다.” (하루키, 『위스키 성지여행』 중)
■ ‘소셜(social)’의 의미를 찾아 떠난 세 번의 스페인
시작은 “인간관계에 대한 사회 초년생으로서의 고민”이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결국 다 싫어졌을 때 불쑥 결심한 스페인 여행. “진짜 소셜이 뭔지 몸소 체험해 보겠다”는 야무진 결심은 ‘소셜의 사전적 의미와 여행의 일대일 대응’이라는 기발한, 그러나 약간은 무모한 시도로 이어지게 된다.
첫 번째 여행(여럿이 함께)으로 선택한 건 탑덱(Topdeck)이었다. 전용 운전기사와 가이드가 딸린 버스를 타고 이베리아 반도를 횡단하는 이 다국적 버스 여행에서, 글쓴이는 전 세계에서 모인 33명의 청춘들과 함께하며 ‘따로 또 같이’의 의미를 익히고 체험한다. 때로는 신기하고 때로는 충격이었던 문화적 차이들, 한국과는 사뭇 다른 외국인들의 ‘관계 맺기’ 방식, 버스 안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주도층과 소외층, 동양의 이방인에서 출발해 ‘우리’로 섞여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들…. 그 시간 동안 그는 “소심했고 겁쟁이였고 의기소침했고 비굴했던, 그러나 또한 대범하고 용감하고 당당했던” 자기의 진짜 모습을 본다. 그리고 “여전히 덕지덕지 엉킨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스스로를 반성하며, 좀 더 독립적이면서도 사교적인 인간으로의 변신을 꿈꾼다.
두 번째 여행(사교적으로)은 그런 희망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졌다. 현지인들의 집을 숙소로 활용하는 카우치서핑과 에어비앤비. 두 가지 모두 사교적이지 못하면 시도할 수 없는 여행 방식이다. 바르셀로나의 젊은 예술가들, 직장인들, 다양한 커플들이 리퀘스트에 응답해 주었고, 그는 독특하고 기괴하고 아늑했던 호스트들의 집에 머물며 스페인의 거리와 사람들과 문화를 만끽한다. 마지막 날 현지 가게의 직원으로부터 들었던 “그녀는 사교성이 좋아요”라는 말은 글쓴이가 그 어떤 말보다도 더 듣고 싶었던 일종의 인증 멘트였고, 이제 드디어 사회를 위한 여행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세 번째 여행. ‘사회적으로’이라는 의미에 어울리는 여행법으로 그가 선택한 건 안달루시아 공정여행이었다. 하지만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빈곤 국가가 아닌 유럽에서도 공정여행이 가능할까? 회사 사정 때문에 일정을 앞당겨 부랴부랴 준비도 없이 떠난 여행에서 그는 ‘세상 어디에서도 사회를 위한 공정한 여행은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한다. 유기농 로컬푸드로만 음식을 만드는 세비야의 ‘km 0 레스토랑’ 순례하기, 말라가의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식당 자원봉사와 기부, 멀미의 공포를 무릅쓰고 단지 ‘탄소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 비행기 대신 선택한 장거리 버스, 스타벅스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악마적 유혹을 끝내 이겨내고 글로벌 프랜차이즈 대신 찾아든 동네 카페들…. 숙소들 중 한곳이었던 그라나다 집시들의 동굴 마을 사끄로몬떼는 멋진 선물이자 축복이었다. 공정여행 전문여행사들도 쉽게 기획하지 못하는 스페인 공정여행에 홀로 나선 용감한 여행자를 위한.
■ 여행서, 또는 길고 긴 질문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스스로를 관찰하고 재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타인의 삶을 통해 나를 돌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행 이야기가 담긴 책이 갖는, 또는 가져야 할 미덕은 자명하다. 누군가가 여행을 통해 느끼고 발견하고 깨달은 것들에 독자들이 스스로를 이입시켜 자기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 그 성패는 당연히 독자들의 공감의 크기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글쓴이는 솔직하다. 직장인으로서 느꼈던 불안, 냉소, 갈증, 회의 등을 보태거나 빼지 않고 있는 그대로 털어놓는다. 여행 중의 느낌과 생각과 행동들 또한 가감 없이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현지에서의 에피소드와 그것을 통해 반추되는 한국에서의 에피소드가 때로는 다큐처럼, 때로는 콩트처럼 지면에 펼쳐진다. 온갖 감정들이 수시로 교차하는 그 생생한 이야기들은 글쓴이의 것인 동시에, 한국에서 21세기에 직장생활을 하는 모든 2030 세대의 것이다. 공감의 여지 또한 그만큼 크고 넓어서, 여행 에세이가 아닌 생활 에세이로도 전혀 손색이 없다.
글쓴이는 끝부분에서 말한다. “나는 지금, 이곳 서울에서 약속을 지키는 여행을 하고 있다”라고. 그리고 또 말한다. “이 책 어디에도 소셜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없으며, 내 이야기는 하나의 길고 긴 질문일 뿐이니 스스로 답을 찾으”라고. 글쓴이의 출발과 여정과 귀로에 함께했던 독자들은 책을 덮는 바로 그 순간부터 답 찾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책을 읽는 도중에 이미 답안 작성을 시작할지도 모른다. 원래 잘 다듬어진 질문은 그 안에 반드시 정답을 품고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
■ 본문 속으로
누군가 또 왜 스페인이냐고 묻는다면 더 이상은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그곳은 여기보다 더 뜨거울 것 같고, 그곳 사람들은 여기 사람들보다 더 따뜻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어서라고 하면 안 될까? 온기가 있는 곳을 향해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짐승처럼, 나도 어딘가 따뜻한 곳으로 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었을 뿐이라고. (21쪽)
여행이 주는 선물 중 가장 큰 것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전 컬쳐 쇼크 후에 미세하게 넓어지는 ‘다름에 대한 이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당황하고 놀라고 때로는 거부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여행에서 돌아와 보면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조금은 변한 내 시각을 마주하게 되는 거라고요. (89쪽)
그런 위로는 좀 찌질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우리는 저마다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스스로를 이해하고, 다독이고, 때로는 찌질하게 위로도 해 가면서 살아야 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언젠가 얼굴도 잘 생기고 집도 부자인데 공부도 잘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엄친아를 보며 “저 자식은 분명 고자일 거야”라고 말했던 찌질한 내 친구 녀석을 이해한다. (139쪽)
그런 것 같다. 내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이유가. 인간을 주인으로 모시지 않고 동등한 존재로 자신을 포지셔닝하는, 본인의 의사를 확시랗게 표현하면서도 사랑을 받는, 그런 기질을 모두에게 이해받는 그런 고양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173쪽)
그 동안 나는 그녀와 같은 한국인 여행자들에게서 내 모습을 본 것이었다. 볼터치를 약하게 칠한 나, 망설이는 나, 길을 잃은 나, 멍하니 앉아 있는 나, 혼자 서성이는 나, 어쩔 줄 모르는 나, 누군가 말을 걸어 주기를 바라는 나. 그런 나에게 지금은 조금 괜찮아진 내가 다가가 말을 걸어 주는 것이었다. 여기로 가 보라고, 이걸 먹어 보라고, 여행이 즐겁기를 바란다고 웃으며 말해 주는 것이었다. 투명한 통로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분주히 오가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위로받는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처럼. (195쪽)
내가 선택한 숙소는 오래전부터 집시들이 모여 살고 있는 동굴마을 사끄로몬떼에 있었다. 언젠가 TV에서 하얀 언덕에 작은 구멍들이 뽕뽕 뚫려 있는 아름다운 마을에서 밤새 플라멩코를 추는 집시들을 보고 내가 죽기 전에 저긴 꼭 간다, 다짐했던 바로 그곳이었다. (236쪽)
여행을 와서도 20년째 세비야의 골목을 지키는 바리스타가 내려 주는 에스프레소를 외면하고 스타벅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찾는 나의 행동이 스페인에 사는 누군가의 추억을 없애는 데 일조하면 어쩌나, 생각하니 오싹해졌다. 그건 정말 큰일이었다. (265쪽)
정말 비밀스런 문이라도 연 것처럼, 절대 들어가면 안 되는 곳에 들어간 것처럼 착각하게 하는 격한 반응이었다. 우리나라 어느 작은 산골마을 식당에 푸른 눈의 금발 여자가 들어섰을 때 순이 할머니와 철수 할아버지가 잘 익은 풋고추를 된장에 찍다 놀라서 돌아본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거야, 하고 생각했다. 거긴 정말이지 현지인이 아니면 절대 알 수 없고 찾아올 수도 없는 ‘오리지널 로컬 레스토랑’이었다. (271쪽)
하루살이 인맥! 이 말이 나를 놀라게 한다. 여행 기간 내내 매일 밤 함께 술을 마신 탑덱 크루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미식 경험을 선사해 준 산 세바스티안 소시에닷 멤버들,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사랑스러운 게이 커플 쎄사르와 조셉, 그라나다에서 만난 이슬람 문화 선생님이었던 압둘, 세비야의 친절한 레스토랑 주인 뻬드로, 너무너무 귀엽고 착한 나디야. 한 명 한 명 기억해 내니 참 그립고 보고 싶은 사람들인데…. (31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