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보 하야오 (| 원제 泣き?ハァちゃ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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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가와이 하야오
• 옮긴이 : 양윤옥
• 출판사 : 뜨인돌
• 가격 : 12,000원
• 책꼴/쪽수 :
125x182, 240쪽
• 펴낸날 : 2008-09-10
• ISBN : 9788958072409
• 십진분류 : 문학 > 일본문학 및 기타 아시아문학 (830)
• 도서상태 : 절판
저자소개
지은이 : 가와이 하야오
1928년 효고 현 사사야마 출생. 임상심리학자, 교토대학 교육학 박사. 1952년 교토대학 이학부 수학과를 졸업한 뒤 1959년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유학했다. 스위스의 융 연구소에서 일본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융 분석가 자격을 취득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온 그는 일생을 융 심리학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일에 매진했으며 이 분야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 2002년 1월 18일 비관료 출신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제16대 문화청장관에 취임했다. 2년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가와이 특유의 재치와 익살 섞인 이야기로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문화청의 지명도 향상에 공헌한 공로가 인정되어 두 번씩이나 장관 유임을 요청받고 2006년까지 4년여를 재임했다. 2006년 8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회복되지 못한 채 2007년 7월 19일 작고했는데, 당시 향년 79세였다.
옮긴이 : 양윤옥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주요 저서로 『슬픈 李箱』, 『그리운 여성 모습』, 『글로 만나는 아이 세상』 등이 있으며, 주요 역서로는 『철도원』, 『장미도둑』, 『일식』, 『달』,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 『게이샤의 노래』, 『연애중독』 등이 있다. 『일식』 번역으로 2005년에 일본 고단샤(講談社)에서 전세계의 번역가들 중 일본문학을 가장 잘 옮긴 역자에게 수여하는 상인 ‘노마 문예번역상’을 수상하였는데, 한국인으로서 이 상을 받은 것은 그가 처음이다.
편집자 추천글
■ 책 소개
융의 분석심리학을 맨 처음 일본에 소개한 대 심리학자이자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석학 중 한 사람이며, 세 차례 문화청장관을 지낸 가와이 하야오가 펼쳐내는 아름다운 어린 시절!
『울보 하야오』. 이 책의 저자 가와이 하야오 씨는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을 맨 처음 일본에 소개한 대 심리학자이자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석학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그러한 학문적 성취를 바탕으로, 비관료 출신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2002년 제16대 문화청장관에 취임했다. 2년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그는 특유의 재치와 익살 섞인 이야기로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문화청의 지명도 향상에 공헌한 공로가 인정되어 두 번이나 장관 유임을 요청받았다. 그렇게 2006년까지 4년여를 재임했는데, 2006년 8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끝내 회복되지 못한 채 2007년 7월 7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책은 문화청장관을 여러 번 지낸 노(老) 심리학자가 자신의 소중한 기억창고를 꼼꼼히 뒤져 빚어낸 자전소설, 혹은 성장소설이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보다 아름다운 서정,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보다 쿨한 감동!
우리 자신의 유년을 기쁘게 발견함으로써 우리의 상처가 스스로 치유되도록 돕는 책!
저자가 밟아온 세세한 발자취 등에서 차이는 있지만, 하여튼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모두 베스트셀러이자 굳건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나 독일어권과 한국에서 하나의 고전(古典)이 되어버린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 책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과 주목할 만한 점이 숨어 있다. 무엇이 특별할까? 저자의 이력이 화려해서? 아니다. 이 책의 특별함은 오히려 일견 평범하고 두드러져 보일 것 없지만 돋보기를 들고 찬찬히 살펴보면 말할 수 없이 순수하고, 아름답고, 그래서 특별해 보이는 그의 어린 시절과, 그 기억을 간결하면서도 감동 넘치는 문체에 오롯이 담아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크고 작은 상처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부끄러운 기억들까지도 용기 있게 드러내는데,그 글을 한 쪽 한 쪽 읽어가다 보면 알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유년을 기쁘게 발견함으로써 우리의 상처가 스스로 치유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임상심리학자인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담히 펼쳐 놓음으로써 독자의 상처에 메스를 대거나 아프게 해부하지 않고도 신기하게 치유해 준다. 그의 소설이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다른 성장소설, 혹은 가족소설들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매우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아 짱! 남자라도 정말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아!”
가와이 하야오 씨는 1928년생이다. 그러니까 대략 1930년대 즈음이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 된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시는 우리의 국토를 강탈하고 백성을 유린한 일본 제국주의의 횡포와 억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런 만큼 일본 내에서는 군국주의의 시대적 광풍이 거세게 몰아치던 때였다. 그런 특수한 시대 배경과 ‘(임상)심리학자’로서의 개인적 배경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저자는 자신의 유년의 기억을 담은 이 소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이 책의 ‘고갱이’를 만질 수 있게 해주는 “하아 짱, 남자라도 정말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아!”라는 한 문장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 주인공 하야오는 울보 중의 울보, 왕 울보다. 어느 정도로 잘 우냐 하면,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가 데굴데굴 굴러 웅덩이에 빠진 것을 보고, “그게… 도토리 떼굴떼굴이 연못에 빠져서… 집에도 못 가고… 흑흑흑.” 하며 흐느껴 울 정도다. 그런 하야오가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와 또다시 어머니의 무릎에 엎드려 펑펑 우는 일이 있었는데, 구와무라 선생님이 먼 동네로 시집을 가는 바람에 유치원을 그만두게 된 까닭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하야오의 등을 두드리며, 그의 동생이 두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너무 슬퍼서 울고 있는 자기 곁에서 하야오가 함께 울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아 짱, 남자라도 정말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아!”
그게 무슨 대단한 말이나 되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군국주의의 광풍이 거세게 몰아치던 당시 상황에서 여자도 아닌, 남자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뭔가 모자란 사람 취급당하던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저자가 만년에 새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 것은 국가적인 억압으로 왜곡된 동시대인의 심성을 되짚어보려 한 것이 아닐까.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는 풍조 속에서 툭하면 눈물을 흘리고 마는 풍부한 감수성의 하아 짱과 ‘남자라도 정말로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다’고 격려해 주시는 어머니. 팍팍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씩씩하게 인간다운 품성을 키워 나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 본문 중에서
중학교 운동장 주위에 줄줄이 늘어선 포플러 나무 잎사귀가 노랗게 물들어갈 즈음, 구와무라 선생님이 갑자기 유치원을 그만두시게 되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아시야’라는 먼 동네로 시집을 가신다는 것이었다.
유치원 놀이방에 친구들이 모두 모여 구와무라 선생님의 작별 인사를 들었다. 하아 짱은 그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금세 터질 듯한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고 혼자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곁에서 울고 있는 여자애들을 보자마자 더 이상 어떻게도 버틸 도리가 없었다. 눈물은 한도 끝도 없이 흘러내리고 마침내 흑흑 흐느껴 울게 되었다.
“남자가 우네?”라고 마치 기묘한 것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여자애들이 흘끔거리는 것을 마주 쏘아보는 일 따위, 승부욕 강하고 고집 센 하아 짱이라도 오늘만은 할 수가 없었다.
하아 짱은 눈물을 싹싹 닦고, 씩씩해 보이는 얼굴이 되었나 어쨌나 잘 확인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유치원에서 울었다는 건 식구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어머니가 다정하게 말을 건네 오셨다.
“오늘, 구와무라 선생님 송별회가 있었니?”
“응.”
하아 짱은 갑자기 부루퉁한 얼굴이 되어 관심 없는 척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운 아이가 있었어?”
“여자애가, 응, 있었어.”
하아 짱은 온몸에 뭔가 이변이 일어나려는 것을 감지하고 방에 있는 불단(佛壇) 쪽으로 눈을 돌리고 뭔가 희한한 것이라도 발견한 척해 보았지만, 어머니는 조용히 말을 걸어 주셨다.
“하아 짱, 남자라도 정말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아!”
뭐, 더 이상 버텨볼 재간이 없었다. 하아 짱은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끝장에는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어머니의 무릎은 따스하고 다정했다.
“남자라도 울어도 괜찮아”라는 말은 하아 짱은 그때까지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울보인 자신이 어쩐지 별로 싫지 않다는 마음으로 하아 짱은 뜰을 바라보았다. 뜰에는 아버지가 자랑하여 마지않는 오엽송(五葉松)이 넉넉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나도 나중에는 오엽송에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하아 짱은 생각했다. 오엽송에는 마토 형은 쓱쓱 올라갈 수 있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어려워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하아 짱은 문득 생각이 난 듯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어머니, 왜 나만 울보야?”
어쩐지 어머니의 얼굴이 흐려지시는 것 같아 하아 짱은 당황하여 덧붙였다.
“타토 형이 유전은 아니라고 하던데?”
어머니는 말을 할까 말까 잠시 망설이시는 듯했지만 이윽고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그건 말이지…….”
그러자 어머니의 눈에 벌써 눈물이 글썽해지시는 것 같아 하아 짱은 얼른 마당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엽송도 어쩐지 기운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하아 짱은 생각나는지 어쩐지 모르겠구나. 네 동생 아키 짱이 두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엄마는 너무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때 하아 짱도 내 곁에서 함께 울어주었어. 장례식 때, 관을 내갈 때에도 하아 짱이 그 앞을 막고 서서 보내면 안 된다고 울부짖으면서 관이 나가는 것을 온힘을 다해 막기도 했단다. 그 모습에 어른들도 덩달아 눈물바람을 했어.”
하아 짱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키 짱과 함께 놀던 광경만은 금세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키 짱이 저고리를 입고 군인 흉내를 내어 막대기를 휘두르며 혀 짧은 소리로 “돌격~!” 하고 종종종 뛰어가는 장면이었다.
어머니는 기모노 차림이었다. 어떤 기모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아름다운 모습으로 방글방글 웃으며 아키 짱이 뛰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하아 짱도 지지 않고 뭔가 막대기를 치켜들고 “돌격~! 돌격~!”하며 내달렸다. 그것이 몹시도 재미있고 신이 났었다.
하지만 아키 짱은 병으로 죽고 말았다. 어머니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날이면 날마다 불단 앞에서 찬불가를 눈물로 읽어 올렸다. 다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삶의 의욕을 잃었던 것이다. 그런 때에 어머니 곁에 항상 하아 짱이 붙어 앉아 어머니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찬불가를 읽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런 하아 짱의 모습에 어머니는 참말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단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우리 하아 짱이 울보가 되었을까나…….”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 본문 16~19p. 중에서
하아 짱은 자기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도토리 ‘떼굴떼굴’을 생각하기만 하면 어쩐지 눈물이 나려고 해서, 이건 형들에게는 물어보지 말자고 생각했다. 하아 짱의 형제들은 모두 착하기는 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울보 따위는 없고 하나같이 씩씩하고 강했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도토리 떼굴떼굴을 걱정한다는 건 어쩐지 ‘여자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누나에게 물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다케 누나는 어딘지 미더운 데가 없어서 “아이, 그런 거 나는 몰라”라고 달아나 버릴 터였다. 하지만 요시 누나는 다정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인 것 같아 뜨개질을 하고 있을 때 슬쩍 물어보았다.
“연못에 빠진 도토리? 그야 집에는 못 갔겠지.”
요시 누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하아 짱은 온 몸이 찌이잉 해왔다. 아차, 또 눈물보가 터지겠구나. 하아 짱은 요시 누나 옆을 뛰쳐나와 이층 아이들 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아, 불쌍하다…….”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연못에 빠진 도토리 떼굴떼굴은 집에도 못 가고 혼자 울고 있는 것이다.
아래층에서는 타토 형이 몹시도 좋아하는 노래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나이답게 눈물을 버려라~”
“아무리 그래도 도토리 떼굴떼굴은 집에 못 가잖아.”
하아 짱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하아 짱,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오키 형의 목소리에 하아 짱은 펄쩍 뛰어 일어났다. 모르는 사이에 큰형이 곁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게…… 도토리 떼굴떼굴이 연못에 빠져서…… 집에도 못 가고…… 흑흑흑.”
하아 짱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서 울었어? 우리 하아 짱은 정말 착한 아이구나!”
오키 형은 따스한 눈길로 하아 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참, 아무래도 하아 짱은 도토리 떼굴떼굴이고 나는 미꾸라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오키 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하아 짱, 도토리 떼굴떼굴은 자기 집에 못 가도 괜찮아.”
“왜?”
“도토리는 말이지, 거기서 싹이 나고 크게 자라서 도토리나무가 되거든.”
하아 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저기 연병장 있는 신당산(神堂山) 밑에 큼직한 나무가 있지? 우리, 거기로 도토리 주우러 갔었잖아? 그게 바로 도토리나무야. 그 나무도 원래는 작은 도토리였어. 작은 도토리에서 싹이 나서 점점 자라고, 그래서 그런 큰 나무가 된 거야. 그러니 도토리 떼굴떼굴은 꼭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
“와아, 도토리 떼굴떼굴은 집에 안 가도 괜찮아?”
“그럼 그럼, 집에 안 가도 거기서 열심히 커서 나무가 되면 좋은 거야!”
하아 짱은 차츰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기도 했겠다,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하아 짱은 이제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못에 퐁당 빠져서 미꾸라지를 난처하게 했던 도토리 떼굴떼굴이 자꾸자꾸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 집에 안 가고 열심히 노력한다.
하아 짱은 그때까지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어쩐지 엄청나게 머나먼, 몹시도 신비한 이야기를 들은 듯한 마음도 들었다.
― 본문 34~37p. 중에서
융의 분석심리학을 맨 처음 일본에 소개한 대 심리학자이자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석학 중 한 사람이며, 세 차례 문화청장관을 지낸 가와이 하야오가 펼쳐내는 아름다운 어린 시절!
『울보 하야오』. 이 책의 저자 가와이 하야오 씨는 융(Carl Gustav Jung)의 분석심리학을 맨 처음 일본에 소개한 대 심리학자이자 일본인이 가장 존경하는 석학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그러한 학문적 성취를 바탕으로, 비관료 출신으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2002년 제16대 문화청장관에 취임했다. 2년의 임기가 끝난 뒤에도 그는 특유의 재치와 익살 섞인 이야기로 강연회를 개최하는 등 문화청의 지명도 향상에 공헌한 공로가 인정되어 두 번이나 장관 유임을 요청받았다. 그렇게 2006년까지 4년여를 재임했는데, 2006년 8월 뇌경색으로 쓰러져 끝내 회복되지 못한 채 2007년 7월 79세의 나이로 작고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 책은 문화청장관을 여러 번 지낸 노(老) 심리학자가 자신의 소중한 기억창고를 꼼꼼히 뒤져 빚어낸 자전소설, 혹은 성장소설이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보다 아름다운 서정,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보다 쿨한 감동!
우리 자신의 유년을 기쁘게 발견함으로써 우리의 상처가 스스로 치유되도록 돕는 책!
저자가 밟아온 세세한 발자취 등에서 차이는 있지만, 하여튼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일본과 우리나라에서 모두 베스트셀러이자 굳건한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한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창가의 토토』나 독일어권과 한국에서 하나의 고전(古典)이 되어버린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이 책에는 그 책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독특한 매력과 주목할 만한 점이 숨어 있다. 무엇이 특별할까? 저자의 이력이 화려해서? 아니다. 이 책의 특별함은 오히려 일견 평범하고 두드러져 보일 것 없지만 돋보기를 들고 찬찬히 살펴보면 말할 수 없이 순수하고, 아름답고, 그래서 특별해 보이는 그의 어린 시절과, 그 기억을 간결하면서도 감동 넘치는 문체에 오롯이 담아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크고 작은 상처의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는 부끄러운 기억들까지도 용기 있게 드러내는데,그 글을 한 쪽 한 쪽 읽어가다 보면 알지 못하는 사이 자신의 유년을 기쁘게 발견함으로써 우리의 상처가 스스로 치유되는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된다.
말하자면, 임상심리학자인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담히 펼쳐 놓음으로써 독자의 상처에 메스를 대거나 아프게 해부하지 않고도 신기하게 치유해 준다. 그의 소설이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다른 성장소설, 혹은 가족소설들과 다르게 받아들여지고 매우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아 짱! 남자라도 정말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아!”
가와이 하야오 씨는 1928년생이다. 그러니까 대략 1930년대 즈음이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 된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자면, 당시는 우리의 국토를 강탈하고 백성을 유린한 일본 제국주의의 횡포와 억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런 만큼 일본 내에서는 군국주의의 시대적 광풍이 거세게 몰아치던 때였다. 그런 특수한 시대 배경과 ‘(임상)심리학자’로서의 개인적 배경은 이 소설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실마리가 된다.
저자는 자신의 유년의 기억을 담은 이 소설을 통해 궁극적으로 독자에게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이 책의 ‘고갱이’를 만질 수 있게 해주는 “하아 짱, 남자라도 정말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아!”라는 한 문장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제목으로도 알 수 있듯 주인공 하야오는 울보 중의 울보, 왕 울보다. 어느 정도로 잘 우냐 하면, 참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가 데굴데굴 굴러 웅덩이에 빠진 것을 보고, “그게… 도토리 떼굴떼굴이 연못에 빠져서… 집에도 못 가고… 흑흑흑.” 하며 흐느껴 울 정도다. 그런 하야오가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와 또다시 어머니의 무릎에 엎드려 펑펑 우는 일이 있었는데, 구와무라 선생님이 먼 동네로 시집을 가는 바람에 유치원을 그만두게 된 까닭이었다. 그때 어머니는 하야오의 등을 두드리며, 그의 동생이 두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너무 슬퍼서 울고 있는 자기 곁에서 하야오가 함께 울어주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하아 짱, 남자라도 정말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아!”
그게 무슨 대단한 말이나 되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군국주의의 광풍이 거세게 몰아치던 당시 상황에서 여자도 아닌, 남자아이가 시도 때도 없이 우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뭔가 모자란 사람 취급당하던 걸 생각하면 이해가 될 것이다.
저자가 만년에 새삼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본 것은 국가적인 억압으로 왜곡된 동시대인의 심성을 되짚어보려 한 것이 아닐까. 남자는 울어서는 안 된다는 풍조 속에서 툭하면 눈물을 흘리고 마는 풍부한 감수성의 하아 짱과 ‘남자라도 정말로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다’고 격려해 주시는 어머니. 팍팍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씩씩하게 인간다운 품성을 키워 나가는 모습이 감동적이다.
■ 본문 중에서
중학교 운동장 주위에 줄줄이 늘어선 포플러 나무 잎사귀가 노랗게 물들어갈 즈음, 구와무라 선생님이 갑자기 유치원을 그만두시게 되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아시야’라는 먼 동네로 시집을 가신다는 것이었다.
유치원 놀이방에 친구들이 모두 모여 구와무라 선생님의 작별 인사를 들었다. 하아 짱은 그 말씀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금세 터질 듯한 눈물을 참느라 입술을 꽉 깨물고 혼자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곁에서 울고 있는 여자애들을 보자마자 더 이상 어떻게도 버틸 도리가 없었다. 눈물은 한도 끝도 없이 흘러내리고 마침내 흑흑 흐느껴 울게 되었다.
“남자가 우네?”라고 마치 기묘한 것이라도 보는 듯한 눈빛으로 여자애들이 흘끔거리는 것을 마주 쏘아보는 일 따위, 승부욕 강하고 고집 센 하아 짱이라도 오늘만은 할 수가 없었다.
하아 짱은 눈물을 싹싹 닦고, 씩씩해 보이는 얼굴이 되었나 어쨌나 잘 확인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유치원에서 울었다는 건 식구들에게는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을 때, 어머니가 다정하게 말을 건네 오셨다.
“오늘, 구와무라 선생님 송별회가 있었니?”
“응.”
하아 짱은 갑자기 부루퉁한 얼굴이 되어 관심 없는 척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운 아이가 있었어?”
“여자애가, 응, 있었어.”
하아 짱은 온몸에 뭔가 이변이 일어나려는 것을 감지하고 방에 있는 불단(佛壇) 쪽으로 눈을 돌리고 뭔가 희한한 것이라도 발견한 척해 보았지만, 어머니는 조용히 말을 걸어 주셨다.
“하아 짱, 남자라도 정말 슬플 때는 울어도 괜찮아!”
뭐, 더 이상 버텨볼 재간이 없었다. 하아 짱은 눈물이 쏟아지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끝장에는 어머니 무릎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어머니의 무릎은 따스하고 다정했다.
“남자라도 울어도 괜찮아”라는 말은 하아 짱은 그때까지 어느 누구에게서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울보인 자신이 어쩐지 별로 싫지 않다는 마음으로 하아 짱은 뜰을 바라보았다. 뜰에는 아버지가 자랑하여 마지않는 오엽송(五葉松)이 넉넉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나도 나중에는 오엽송에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하아 짱은 생각했다. 오엽송에는 마토 형은 쓱쓱 올라갈 수 있지만 아직 어린 아이들은 어려워서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하아 짱은 문득 생각이 난 듯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어머니, 왜 나만 울보야?”
어쩐지 어머니의 얼굴이 흐려지시는 것 같아 하아 짱은 당황하여 덧붙였다.
“타토 형이 유전은 아니라고 하던데?”
어머니는 말을 할까 말까 잠시 망설이시는 듯했지만 이윽고 조심스럽게 입을 여셨다.
“그건 말이지…….”
그러자 어머니의 눈에 벌써 눈물이 글썽해지시는 것 같아 하아 짱은 얼른 마당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엽송도 어쩐지 기운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하아 짱은 생각나는지 어쩐지 모르겠구나. 네 동생 아키 짱이 두 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엄마는 너무너무 슬퍼서 눈물을 흘렸는데 그때 하아 짱도 내 곁에서 함께 울어주었어. 장례식 때, 관을 내갈 때에도 하아 짱이 그 앞을 막고 서서 보내면 안 된다고 울부짖으면서 관이 나가는 것을 온힘을 다해 막기도 했단다. 그 모습에 어른들도 덩달아 눈물바람을 했어.”
하아 짱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키 짱과 함께 놀던 광경만은 금세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키 짱이 저고리를 입고 군인 흉내를 내어 막대기를 휘두르며 혀 짧은 소리로 “돌격~!” 하고 종종종 뛰어가는 장면이었다.
어머니는 기모노 차림이었다. 어떤 기모노인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아름다운 모습으로 방글방글 웃으며 아키 짱이 뛰는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 하아 짱도 지지 않고 뭔가 막대기를 치켜들고 “돌격~! 돌격~!”하며 내달렸다. 그것이 몹시도 재미있고 신이 났었다.
하지만 아키 짱은 병으로 죽고 말았다. 어머니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 날이면 날마다 불단 앞에서 찬불가를 눈물로 읽어 올렸다. 다른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삶의 의욕을 잃었던 것이다. 그런 때에 어머니 곁에 항상 하아 짱이 붙어 앉아 어머니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찬불가를 읽는 시늉을 하기도 했다.
“그런 하아 짱의 모습에 어머니는 참말로 얼마나 큰 위로를 받았는지 모른단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우리 하아 짱이 울보가 되었을까나…….”
어머니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 본문 16~19p. 중에서
하아 짱은 자기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도토리 ‘떼굴떼굴’을 생각하기만 하면 어쩐지 눈물이 나려고 해서, 이건 형들에게는 물어보지 말자고 생각했다. 하아 짱의 형제들은 모두 착하기는 했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울보 따위는 없고 하나같이 씩씩하고 강했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도토리 떼굴떼굴을 걱정한다는 건 어쩐지 ‘여자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에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누나에게 물어보자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다케 누나는 어딘지 미더운 데가 없어서 “아이, 그런 거 나는 몰라”라고 달아나 버릴 터였다. 하지만 요시 누나는 다정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인 것 같아 뜨개질을 하고 있을 때 슬쩍 물어보았다.
“연못에 빠진 도토리? 그야 집에는 못 갔겠지.”
요시 누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하아 짱은 온 몸이 찌이잉 해왔다. 아차, 또 눈물보가 터지겠구나. 하아 짱은 요시 누나 옆을 뛰쳐나와 이층 아이들 방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한쪽 구석에 쭈그리고 앉았다.
“아아, 불쌍하다…….”
눈물이 주르륵 쏟아졌다. 연못에 빠진 도토리 떼굴떼굴은 집에도 못 가고 혼자 울고 있는 것이다.
아래층에서는 타토 형이 몹시도 좋아하는 노래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나이답게 눈물을 버려라~”
“아무리 그래도 도토리 떼굴떼굴은 집에 못 가잖아.”
하아 짱의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하아 짱, 왜 그래? 어디 다쳤어?”
오키 형의 목소리에 하아 짱은 펄쩍 뛰어 일어났다. 모르는 사이에 큰형이 곁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게…… 도토리 떼굴떼굴이 연못에 빠져서…… 집에도 못 가고…… 흑흑흑.”
하아 짱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래서 울었어? 우리 하아 짱은 정말 착한 아이구나!”
오키 형은 따스한 눈길로 하아 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거 참, 아무래도 하아 짱은 도토리 떼굴떼굴이고 나는 미꾸라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오키 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근데 하아 짱, 도토리 떼굴떼굴은 자기 집에 못 가도 괜찮아.”
“왜?”
“도토리는 말이지, 거기서 싹이 나고 크게 자라서 도토리나무가 되거든.”
하아 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저기 연병장 있는 신당산(神堂山) 밑에 큼직한 나무가 있지? 우리, 거기로 도토리 주우러 갔었잖아? 그게 바로 도토리나무야. 그 나무도 원래는 작은 도토리였어. 작은 도토리에서 싹이 나서 점점 자라고, 그래서 그런 큰 나무가 된 거야. 그러니 도토리 떼굴떼굴은 꼭 집에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아!”
“와아, 도토리 떼굴떼굴은 집에 안 가도 괜찮아?”
“그럼 그럼, 집에 안 가도 거기서 열심히 커서 나무가 되면 좋은 거야!”
하아 짱은 차츰 무슨 얘기인지 알아듣기도 했겠다, 더 이상 울지 않았다.
하아 짱은 이제 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못에 퐁당 빠져서 미꾸라지를 난처하게 했던 도토리 떼굴떼굴이 자꾸자꾸 자라서 큰 나무가 되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보이는 것만 같았다.
― 집에 안 가고 열심히 노력한다.
하아 짱은 그때까지 그런 건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어쩐지 엄청나게 머나먼, 몹시도 신비한 이야기를 들은 듯한 마음도 들었다.
― 본문 34~37p.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