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장의 피아니스트 (VIVAVIVO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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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나윤아
• 출판사 : 뜨인돌
• 가격 : 10,000원
• 책꼴/쪽수 :
152x210, 208쪽
• 펴낸날 : 2013-04-30
• ISBN : 9788958074304
• 십진분류 : 문학 > 문학 (800)
• 도서상태 : 정상
• 추천기관 :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청소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하반기 우수문학도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 하반기 우수문학도서
저자소개
지은이 : 나윤아
작가의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K. 롤링을 다룬 신문기사를 본 것이 꿈의 시작이었다. 사람 사는 이야기,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써내고 싶다는 절실한 열망을 갖고 있다.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은데, 특히 청소년들에게 그렇다. 대학에서 상담심리를 전공했고, 지금은 초등학교 전문상담사로 일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는 『공사장의 피아니스트』『안녕, 나나』『미인의 법칙』『홀릭』 등이 있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자기 마음과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고3 어린 청춘들의 이야기. 작가가 되고 싶지만 약대에 가야 하는 혜영이, 배우가 되고 싶지만 피아노를 쳐야 하는 수지. 학교에서 매년 열리는 음악제에서 뮤지컬이 클라이맥스 공연으로 확정되고 두 아이의 진짜 꿈이 꿈틀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이들 앞에 자유로운 영혼, 박하가 나타난다. 박하는 곱상한 얼굴에 베일에 싸인 듯 호기심을 일으키는 소년. 외모와 아우라에서 오는 소문과 억측들로 인해 어느 순간 ‘노는 애’로 자리 잡았다. 혜영이는 음악실에서 그 아이를 만난 후 그 올곧은 눈빛에 이끌린다. 그리고 혜영이가 습작으로 쓴 시나리오를 박하가 공모전에 제출하고 당선이 되면서 혜영이의 꿈에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다. 박하의 꿈은 피아니스트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랑곳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말하고 피아니스트의 꿈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박하의 모습에 혜영이는 강한 도전을 받는다. 꿈, 자기가 좋아하는 일 따위는 대학 간판에 순위가 밀린 지 오래인 우리나라 십대들에게 소설 속 주인공들이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자기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큰 도전을 준다.
편집자 추천글
대한민국 십대에게 전하는 뜨거운 성장 소설
『공사장의 피아니스트』는 우리나라 십대들의 답답한 현실과 갈등,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희망이 절묘하게 조합된 성장 소설이다.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라지만, 사실 아파도 그냥 가야 하는 게 십대다. 꿈이라는 단어는 대학교 간판과 직업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된 지 오래. 뭔가 생각할 겨를도,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입시 시장에 내던져져 아파하고 있는 게 십대다. 『공사장의 피아니스트』는 힘겹게 살고 있는 우리나라 십대들에게 남이 강요하는 꿈이 아닌 새로운 꿈의 의미를 보여 주는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인터넷 소설과 교훈거리를 대놓고 드러내는 소설 사이에서 길을 헤맬 때가 많다. 그런 와중에『공사장의 피아니스트』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현실적인 소재,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흡인력 있는 전개를 통해 청소년 소설이 가야 할 좋은 예를 보여 준다.
『공사장의 피아니스트』의 박하는 지지리 가난하고, 일찌감치 공부도 포기해 버린 고3 남학생이다. 학교에서는 잠만 자고, 음악 시간에만 잠깐 깨어 있다. 즉, 학교가 좋아하지 않는 부류.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특별한 게 있다. 피아노에 대한 남다른 재능, 그리고 애정. 이것이 이 아이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든다. 그리고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길을 찾아가려는 의지는 입시만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아이들을 자꾸만 돌려세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억지로 누르며 살고 있던 모범생 혜영이는 박하의 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는 변화가 시작된다. 혜영이는 부모님의 생각에 맞춰, 세상의 흐름에 맞춰 만들어 왔던 꿈을 내려놓고 자기가 원하는 글쓰기를 계속해 보기로 결심하고 음악제 뮤지컬 시나리오를 만들어간다. 박하의 당당함과 꿈에 대한 흔들림 없는 생각은 혜영이를 응원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도록 돕는다. 이 둘이 보여 주는 관계는 핑크빛 모드와 더불어 서로를 흔들림 없이 지지해 주는 단단한 사이가 되어 간다.
현실적인 캐릭터, 따뜻한 시선, 솔직한 문체로 풀어내는 청춘들의 이야기
『공사장의 피아니스트』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러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놓치지 않고 드러낸다. 모범생 혜영이와 고상한 척하는 부모님 사이의 갈등, 박하와 밤무대를 전전하는 누나의 이야기, 불운의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훈남 교사 유한민이 아이들을 통해 변해 가고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은 그저 순차적인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와 생생하게 읽힌다.
또한 작가만의 따뜻한 시선과 솔직한 문체는 십대들의 감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위로한다. 소설 전체에,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있고 눈에 빛을 잃은 십대들에게 용기를 주는 용납과 위로의 메시지가 흐르고 있다.
“선택한 이상, 계속 자신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 내가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겁이 많고 소심한지, 미친 건 아닌지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어. 이젠 직진이다. 열심히 해 보자.”
이리저리 치이기 마련인 고3들은 유한민의 넉살 좋은 말만으로도 기운이 나는 듯 맑게 웃었다. 그게 꼭 어떻게든 해 나가고야 말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져서 혜영이는 자신이 그 아이들 틈에 있다는 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91쪽
수지는 갑자기 멈춰 서더니 뮤지컬의 한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혜영이가 쓴 가사였다. “천천히 조금씩 자라고 싶어. 꿈이 있다면 언젠가는 저 하늘에 닿을 테니까.”
혜영이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지도, 자신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열아홉을 아름답게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194쪽
‘꿈’이라는 진부한 단어의 재발견
『공사장의 피아니스트』의 가장 큰 힘은 가슴을 아릿하게 만드는 감동이다. 곱상한 얼굴을 하고서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박하의 삶은 혜영이 엄마의 말대로 악의 구렁텅이에서의 삶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박하는 꿈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거칠게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꿈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박하의 이야기를 통해, 꿈이라는 것이 남들만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예찬하게 만들고 살아갈 이유를 주는 단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꿈은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는 대신, 좁더라도 조금은 늦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만들며 살게 하는 것이다. 박하를 통해, 혜영이를 통해 독자는 ‘꿈’이라는 진부한 단어의 진짜 의미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주제의식을 담아내는 테마 세계 문학 《비바비보》 시리즈
비바비보는 뜨인돌출판사의 청소년 문학 브랜드로, ‘깨어 있는 삶’이라는 뜻의 에스페란토 어다. 탄탄한 이야기에 사회적 주제의식을 담아냄으로써, 청소년들이 ‘더불어 사는 삶’에 촉수를 대고 늘 깨어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에서 기획되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에게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권『류명성 통일빵집』: 남북한 청소년들이 함께 호흡하는 이야기를 담은 6편의 단편 소설.
18권『나의 영웅 제이크맨』: 아이들의 사흘길 여정을 통해 재소자 자녀들의 불편한 진실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17권『강은 언제나 옳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을 둘러싼 소년들의 모험을 통해 이야기한다.
16권『모든 일의 발단은 고양이』: 뼛속까지 도시 소년인 주인공이 시골에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알아 가는 이야기.
15권『메모리 보이』: 열여섯 살 소년이 전해 주는 불안한 지구 위에서 살아남는 법.
14권『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종족인 중학생의 속내를 시원하게 보여 주는 소설로 십대들에게 공감과 성장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13권 『열아홉의 프리킥』: 세계 최고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레아가 아빠의 암 선고 소식을 접하고 겪는 갈등과 성장기를 다룬다. 책따세 권장도서로 선정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12권『프랜신의 학교 습격 사건』: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일까? 용기 없고 겁 많은 소녀 프랜신의 당당하고 솔직한 자아 찾기 프로젝트.
11권 『그래도 언제나 캡틴』: 양아버지의 비열한 모습을 통해 현실의 이면을 알게 되는 한 소년의 이야기. 열다섯 소년의 가슴 시린 성장통은 발 딛고 살아가는 ‘진짜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한다.
10권 『우리 옆집에 요정이 산다』: 또래와 하나가 되고 싶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모습을 풍자하면서 편견 없이 친구가 되는 법을 가르쳐 준다.
9권 『바람에게 부탁했어』: 제2차 세계대전 중 홀려 남겨진 아홉 살 소녀의 생존 분투기를 그린 소설. 인간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바라보는 아이의 순수한 시선이 당시의 참상을 오롯이 보여 준다.
8권 『굿바이, 찰리』: 다른 세계와 충돌하면서 자라나는 십대들의 이야기. 용기 없는 한 친구가 대단히 포용력 있고 용감한 친구를 만나면서 그리는 우정과 성장의 이야기가 가슴 벅차다.
7권 『기관차 선생님』: 말을 못하는 선생님이 전하는, 또렷하고 울림 있는 가르침. 말을 하지 못하는 섬마을 교사를 통해 부드러움의 힘과 말보다 중요한 것은 말을 증명해 내는 것임을 전해 준다.
6권 『트레버』: 12살 소년의 세상을 바꾼 제안. 주인공 트레버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세 사람 도와주기를 실천해 보기로 한다. 이 책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출범한 PIFF(Pay it Forward Foundation)은 지금도 실제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5권 『사막으로 사라진 아이들』: 어린이 노동착취를 고발하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 아동학대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아이들의 권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4권 『태양이 없는 땅』: 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새로운 접근으로 담아낸 SF 소설. 온난화로 인해 육지마저 잃은 세상을 그려내면서 극한 상황 속에서 엇갈리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다.
3권 『황허에 떨어진 꽃잎』: 독일로 입양된 중국 소녀의 정체성과 용서의 문제를 다룬다. 그 과정을 통해 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이해와 용서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2권 『내일은 도시를 하나 세울까 해』: 어른이 멸종되고 아이들만 남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심도 있게 그린다.
1권 『티모시의 유산』: 백인 소년이 흑인에 대한 편견을 벗고 흑인 노예 티모시와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인종차별과 편견이 난무하고,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책 속에서
박하가 서 있던 곳의 모래 먼지가 다시 떠올랐다.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그런 곳은 엄마가 혐오하는 악의 구렁텅이였다(엄마는 그런 장소들을 ‘악의 구렁텅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고수익과 안정성이 보장된 일을 해야 한다고 엄마는 누누이 말해 왔다.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닦아 놓은 길 위를 열심히 달려왔다. 하지만 난 아직 엄마가 말하는 ‘행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해가 갈수록 행복이란 놈의 행방은 묘연해지기만 했다. 그런데 박하는 우리 엄마가 그토록 경고하던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 41~42쪽
혜영이는 ‘흑건’을 잘 모르지만, 수지의 연주는 악보를 스캔한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자기만의 색깔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냥 ‘똑같은’ 정도가 아닌,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악보에 충실한 연주는 사실 경이로운 것이었다. 콩쿠르에서는 그런 연주법이 더없는 환호와 찬사를 받았고, 수지는 늘 깔끔하게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박하는 낯선 방법으로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묘하게 달랐다.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흑건과 분명하게 다르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쇼팽의 흑건이 아니라 박하의 흑건이었다.
가슴속이 일렁거렸다. 박하를 비추는 조명만큼이나 또렷하고 밝게 넘실거리는 무언가가 혜영이의 속을 휘저었다 - 58쪽
그리고 오디션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최수지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걔 미친 거 아니야? 웬 배우 오디션?”
“요즘 우리 학교 애들 왜 이런다냐. 박하도 감당이 안 되는데 최수지까지?”
“냅둬라. 박하야 그렇다 치고, 최수지는 자기 무덤 파는 거야. 나중에 대학에 똑 떨어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혜영이는 아이들을 힐끔 노려보았다.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소심한 성격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사실 자기도 수지한테 질투도 하고 영 못마땅했으니까.
“근데 걔 노래 좀 되더라. 피아노만 붙들고 늘어지는 줄 알았더니.”
“잘하는 거, 좋아하는 게 뭐가 중요하냐. 대학 마크가 중요하지. 넌 한국에서 학교를 12년째 다니면서도 모르냐.”
이토록 무거운 대화를 하면서 여자애들은 까르르 웃었다. 저 애들이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건 딱히 좋아하는 일이 없기 때문일 거라고 혜영이는 생각했다. 자기가 간절히 바라는 그 일이 아닌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아쉬움, 괴로움이 저 애들에겐 없는 것이다. 혜영이는 그 애들이 조금은 부러웠다. - 66쪽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누누이 강조했던 ‘악의 구렁텅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돈은 코딱지만큼 주면서 온갖 고생스러운 일은 다 시키는 ‘악의 구렁텅이.’ 행복한 미래는 찾아볼 수 없는 곳.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 꼭 의사, 간호사, 약사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엄마의 지극한 충고들.
“뭐,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이 정도는 참아 줘야지.”
‘하고 싶은 거? 그게 뭔데? 피아노? 웃기지 마. 아무리 피아노를 잘 쳐도 이런 데서는 쥐꼬리만 한 기회도 못 만나. 좋은 대학 가서, 그래서….’
혜영이는 생각 끝에 짜증이 치솟아 시선을 돌렸다. 박하는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혜영이에게 공책을 툭 밀었다.
“마흔이나 쉰 정도 되면 피아니스트, 될 수 있지 않겠냐?”
혜영이는 공책을 다시 박하 쪽으로 밀었다.
“아니, 그러다가는 평생 가도 힘들걸? 부모님이 빵빵하게 밀어 주는 실력 좋은 애들이 깔렸으니까.”
“상관없어. 난 그냥 피아노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박하가 빙긋이 웃었다.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곧고 강직한 눈이 불편했다. 난 한 걸음 내딛기도 불안한데, 얘는 너무나 쉽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말한다. 꼭 자신이 바보 멍청이가 된 것 같았다. - 72쪽
처음 나를 음악실에 데려가던 날, 누나는 자랑이라도 하듯이 피아노를 보여 주었다. 누나는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거대하고 반질거리는, 마치 꼭 고래 같은 몸통에서 퍼져 나오는 매혹적이고 섬세한 멜로디는 심장의 어딘가에서 시작되는 한숨 혹은 미소 같았다. 연주가 끝나고 누나는 “어때?” 하고 물었지만 내 머릿속은 누나의 노래가 아닌 다른 것으로 가득했다. 피아노에 대한 내 열병이 시작된 건 바로 그때부터다.
내가 피아노에 관심을 보이자 누나는 자주 나를 음악실에 데려가서 피아노를 치게 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는 내게 있는 재능을 알아차렸다. 물론 나는 그게 재능인지 몰랐고, 지금도 딱히 재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그냥 그 검은 악기를 연주하는 게 좋았고, 내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힘 있는 음정들이 좋았을 뿐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누나는 내 재능을 키워 주고 싶어 했다. 자신이 느끼는 좌절감을 나에게까지 맛보도록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 145쪽
『공사장의 피아니스트』는 우리나라 십대들의 답답한 현실과 갈등,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희망이 절묘하게 조합된 성장 소설이다.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라지만, 사실 아파도 그냥 가야 하는 게 십대다. 꿈이라는 단어는 대학교 간판과 직업이라는 단어와 동의어가 된 지 오래. 뭔가 생각할 겨를도,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돌아볼 겨를도 없이 입시 시장에 내던져져 아파하고 있는 게 십대다. 『공사장의 피아니스트』는 힘겹게 살고 있는 우리나라 십대들에게 남이 강요하는 꿈이 아닌 새로운 꿈의 의미를 보여 주는 소설이다.
청소년 소설은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인터넷 소설과 교훈거리를 대놓고 드러내는 소설 사이에서 길을 헤맬 때가 많다. 그런 와중에『공사장의 피아니스트』는 매력적인 캐릭터와 현실적인 소재,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흡인력 있는 전개를 통해 청소년 소설이 가야 할 좋은 예를 보여 준다.
『공사장의 피아니스트』의 박하는 지지리 가난하고, 일찌감치 공부도 포기해 버린 고3 남학생이다. 학교에서는 잠만 자고, 음악 시간에만 잠깐 깨어 있다. 즉, 학교가 좋아하지 않는 부류. 그런데 이 아이에게는 특별한 게 있다. 피아노에 대한 남다른 재능, 그리고 애정. 이것이 이 아이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든다. 그리고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길을 찾아가려는 의지는 입시만을 향해 쉼 없이 달려가는 아이들을 자꾸만 돌려세운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억지로 누르며 살고 있던 모범생 혜영이는 박하의 피아노에 대한 열정을 보면서 자기도 모르는 변화가 시작된다. 혜영이는 부모님의 생각에 맞춰, 세상의 흐름에 맞춰 만들어 왔던 꿈을 내려놓고 자기가 원하는 글쓰기를 계속해 보기로 결심하고 음악제 뮤지컬 시나리오를 만들어간다. 박하의 당당함과 꿈에 대한 흔들림 없는 생각은 혜영이를 응원하고 새로운 삶을 살고 있도록 돕는다. 이 둘이 보여 주는 관계는 핑크빛 모드와 더불어 서로를 흔들림 없이 지지해 주는 단단한 사이가 되어 간다.
현실적인 캐릭터, 따뜻한 시선, 솔직한 문체로 풀어내는 청춘들의 이야기
『공사장의 피아니스트』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그러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심리를 놓치지 않고 드러낸다. 모범생 혜영이와 고상한 척하는 부모님 사이의 갈등, 박하와 밤무대를 전전하는 누나의 이야기, 불운의 천재 피아니스트이자 훈남 교사 유한민이 아이들을 통해 변해 가고 변화를 일으키는 과정은 그저 순차적인 사건의 나열이 아니라 나와 우리의 이야기로 다가와 생생하게 읽힌다.
또한 작가만의 따뜻한 시선과 솔직한 문체는 십대들의 감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위로한다. 소설 전체에, 어딘지 모르게 주눅이 들어 있고 눈에 빛을 잃은 십대들에게 용기를 주는 용납과 위로의 메시지가 흐르고 있다.
“선택한 이상, 계속 자신을 의심할 필요는 없지. 내가 얼마나 약한지, 얼마나 겁이 많고 소심한지, 미친 건 아닌지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어. 이젠 직진이다. 열심히 해 보자.”
이리저리 치이기 마련인 고3들은 유한민의 넉살 좋은 말만으로도 기운이 나는 듯 맑게 웃었다. 그게 꼭 어떻게든 해 나가고야 말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져서 혜영이는 자신이 그 아이들 틈에 있다는 게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91쪽
수지는 갑자기 멈춰 서더니 뮤지컬의 한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혜영이가 쓴 가사였다. “천천히 조금씩 자라고 싶어. 꿈이 있다면 언젠가는 저 하늘에 닿을 테니까.”
혜영이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수지도, 자신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열아홉을 아름답게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서. -194쪽
‘꿈’이라는 진부한 단어의 재발견
『공사장의 피아니스트』의 가장 큰 힘은 가슴을 아릿하게 만드는 감동이다. 곱상한 얼굴을 하고서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박하의 삶은 혜영이 엄마의 말대로 악의 구렁텅이에서의 삶이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박하는 꿈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이야기한다. 거칠게 살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꿈에 가까이 다가가 있는 박하의 이야기를 통해, 꿈이라는 것이 남들만큼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예찬하게 만들고 살아갈 이유를 주는 단어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꿈은 다른 사람이 가는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는 대신, 좁더라도 조금은 늦더라도 자신만의 길을 만들며 살게 하는 것이다. 박하를 통해, 혜영이를 통해 독자는 ‘꿈’이라는 진부한 단어의 진짜 의미를 다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주제의식을 담아내는 테마 세계 문학 《비바비보》 시리즈
비바비보는 뜨인돌출판사의 청소년 문학 브랜드로, ‘깨어 있는 삶’이라는 뜻의 에스페란토 어다. 탄탄한 이야기에 사회적 주제의식을 담아냄으로써, 청소년들이 ‘더불어 사는 삶’에 촉수를 대고 늘 깨어 살아가기를 바라는 뜻에서 기획되었다. 2007년부터 지금까지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에게까지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19권『류명성 통일빵집』: 남북한 청소년들이 함께 호흡하는 이야기를 담은 6편의 단편 소설.
18권『나의 영웅 제이크맨』: 아이들의 사흘길 여정을 통해 재소자 자녀들의 불편한 진실과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17권『강은 언제나 옳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곳,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강을 둘러싼 소년들의 모험을 통해 이야기한다.
16권『모든 일의 발단은 고양이』: 뼛속까지 도시 소년인 주인공이 시골에서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알아 가는 이야기.
15권『메모리 보이』: 열여섯 살 소년이 전해 주는 불안한 지구 위에서 살아남는 법.
14권『어쩌다 중학생 같은 걸 하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종족인 중학생의 속내를 시원하게 보여 주는 소설로 십대들에게 공감과 성장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13권 『열아홉의 프리킥』: 세계 최고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 레아가 아빠의 암 선고 소식을 접하고 겪는 갈등과 성장기를 다룬다. 책따세 권장도서로 선정되어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12권『프랜신의 학교 습격 사건』: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일까? 용기 없고 겁 많은 소녀 프랜신의 당당하고 솔직한 자아 찾기 프로젝트.
11권 『그래도 언제나 캡틴』: 양아버지의 비열한 모습을 통해 현실의 이면을 알게 되는 한 소년의 이야기. 열다섯 소년의 가슴 시린 성장통은 발 딛고 살아가는 ‘진짜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가게 한다.
10권 『우리 옆집에 요정이 산다』: 또래와 하나가 되고 싶었던 한 소녀의 이야기.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모습을 풍자하면서 편견 없이 친구가 되는 법을 가르쳐 준다.
9권 『바람에게 부탁했어』: 제2차 세계대전 중 홀려 남겨진 아홉 살 소녀의 생존 분투기를 그린 소설. 인간의 나약함과 비겁함을 바라보는 아이의 순수한 시선이 당시의 참상을 오롯이 보여 준다.
8권 『굿바이, 찰리』: 다른 세계와 충돌하면서 자라나는 십대들의 이야기. 용기 없는 한 친구가 대단히 포용력 있고 용감한 친구를 만나면서 그리는 우정과 성장의 이야기가 가슴 벅차다.
7권 『기관차 선생님』: 말을 못하는 선생님이 전하는, 또렷하고 울림 있는 가르침. 말을 하지 못하는 섬마을 교사를 통해 부드러움의 힘과 말보다 중요한 것은 말을 증명해 내는 것임을 전해 준다.
6권 『트레버』: 12살 소년의 세상을 바꾼 제안. 주인공 트레버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세 사람 도와주기를 실천해 보기로 한다. 이 책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출범한 PIFF(Pay it Forward Foundation)은 지금도 실제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5권 『사막으로 사라진 아이들』: 어린이 노동착취를 고발하는 가슴 먹먹한 이야기. 아동학대로 인해 무너지고 있는 아이들의 권리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4권 『태양이 없는 땅』: 위기에 처한 생태계를 새로운 접근으로 담아낸 SF 소설. 온난화로 인해 육지마저 잃은 세상을 그려내면서 극한 상황 속에서 엇갈리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다.
3권 『황허에 떨어진 꽃잎』: 독일로 입양된 중국 소녀의 정체성과 용서의 문제를 다룬다. 그 과정을 통해 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이해와 용서의 개념을 이해할 수 있다.
2권 『내일은 도시를 하나 세울까 해』: 어른이 멸종되고 아이들만 남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어른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심도 있게 그린다.
1권 『티모시의 유산』: 백인 소년이 흑인에 대한 편견을 벗고 흑인 노예 티모시와 친구가 되는 과정을 그린다. 인종차별과 편견이 난무하고,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상에 진중한 메시지를 던진다.
책 속에서
박하가 서 있던 곳의 모래 먼지가 다시 떠올랐다.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그런 곳은 엄마가 혐오하는 악의 구렁텅이였다(엄마는 그런 장소들을 ‘악의 구렁텅이’라고 표현했다). 그런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고수익과 안정성이 보장된 일을 해야 한다고 엄마는 누누이 말해 왔다. 그게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닦아 놓은 길 위를 열심히 달려왔다. 하지만 난 아직 엄마가 말하는 ‘행복’을 찾지 못한 것 같다. 해가 갈수록 행복이란 놈의 행방은 묘연해지기만 했다. 그런데 박하는 우리 엄마가 그토록 경고하던 곳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다. - 41~42쪽
혜영이는 ‘흑건’을 잘 모르지만, 수지의 연주는 악보를 스캔한 것 같다는 느낌을 주었다. 그래서 자기만의 색깔이 없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그냥 ‘똑같은’ 정도가 아닌, ‘한 치의 오차도 없을 정도’로 악보에 충실한 연주는 사실 경이로운 것이었다. 콩쿠르에서는 그런 연주법이 더없는 환호와 찬사를 받았고, 수지는 늘 깔끔하게 대상을 거머쥐었다. 그런데 박하는 낯선 방법으로 건반을 두드리고 있었다. 원곡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묘하게 달랐다. 정확히 어디가 어떻게 다르다고 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의 흑건과 분명하게 다르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이건 쇼팽의 흑건이 아니라 박하의 흑건이었다.
가슴속이 일렁거렸다. 박하를 비추는 조명만큼이나 또렷하고 밝게 넘실거리는 무언가가 혜영이의 속을 휘저었다 - 58쪽
그리고 오디션이 끝나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최수지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걔 미친 거 아니야? 웬 배우 오디션?”
“요즘 우리 학교 애들 왜 이런다냐. 박하도 감당이 안 되는데 최수지까지?”
“냅둬라. 박하야 그렇다 치고, 최수지는 자기 무덤 파는 거야. 나중에 대학에 똑 떨어져 봐야 정신을 차리지.”
혜영이는 아이들을 힐끔 노려보았다. 한마디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소심한 성격에 차마 그러지 못했다. 사실 자기도 수지한테 질투도 하고 영 못마땅했으니까.
“근데 걔 노래 좀 되더라. 피아노만 붙들고 늘어지는 줄 알았더니.”
“잘하는 거, 좋아하는 게 뭐가 중요하냐. 대학 마크가 중요하지. 넌 한국에서 학교를 12년째 다니면서도 모르냐.”
이토록 무거운 대화를 하면서 여자애들은 까르르 웃었다. 저 애들이 저렇게 웃을 수 있는 건 딱히 좋아하는 일이 없기 때문일 거라고 혜영이는 생각했다. 자기가 간절히 바라는 그 일이 아닌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두려움, 아쉬움, 괴로움이 저 애들에겐 없는 것이다. 혜영이는 그 애들이 조금은 부러웠다. - 66쪽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누누이 강조했던 ‘악의 구렁텅이’ 이야기가 떠올랐다. 돈은 코딱지만큼 주면서 온갖 고생스러운 일은 다 시키는 ‘악의 구렁텅이.’ 행복한 미래는 찾아볼 수 없는 곳.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 꼭 의사, 간호사, 약사 중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엄마의 지극한 충고들.
“뭐, 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 이 정도는 참아 줘야지.”
‘하고 싶은 거? 그게 뭔데? 피아노? 웃기지 마. 아무리 피아노를 잘 쳐도 이런 데서는 쥐꼬리만 한 기회도 못 만나. 좋은 대학 가서, 그래서….’
혜영이는 생각 끝에 짜증이 치솟아 시선을 돌렸다. 박하는 턱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으며 혜영이에게 공책을 툭 밀었다.
“마흔이나 쉰 정도 되면 피아니스트, 될 수 있지 않겠냐?”
혜영이는 공책을 다시 박하 쪽으로 밀었다.
“아니, 그러다가는 평생 가도 힘들걸? 부모님이 빵빵하게 밀어 주는 실력 좋은 애들이 깔렸으니까.”
“상관없어. 난 그냥 피아노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박하가 빙긋이 웃었다.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곧고 강직한 눈이 불편했다. 난 한 걸음 내딛기도 불안한데, 얘는 너무나 쉽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말한다. 꼭 자신이 바보 멍청이가 된 것 같았다. - 72쪽
처음 나를 음악실에 데려가던 날, 누나는 자랑이라도 하듯이 피아노를 보여 주었다. 누나는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거대하고 반질거리는, 마치 꼭 고래 같은 몸통에서 퍼져 나오는 매혹적이고 섬세한 멜로디는 심장의 어딘가에서 시작되는 한숨 혹은 미소 같았다. 연주가 끝나고 누나는 “어때?” 하고 물었지만 내 머릿속은 누나의 노래가 아닌 다른 것으로 가득했다. 피아노에 대한 내 열병이 시작된 건 바로 그때부터다.
내가 피아노에 관심을 보이자 누나는 자주 나를 음악실에 데려가서 피아노를 치게 해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는 내게 있는 재능을 알아차렸다. 물론 나는 그게 재능인지 몰랐고, 지금도 딱히 재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난 그냥 그 검은 악기를 연주하는 게 좋았고, 내 손끝에서 터져 나오는 힘 있는 음정들이 좋았을 뿐이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건, 누나는 내 재능을 키워 주고 싶어 했다. 자신이 느끼는 좌절감을 나에게까지 맛보도록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 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