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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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김현아
• 출판사 : 뜨인돌
• 가격 : 15,000원
• 책꼴/쪽수 :
145x210, 320쪽
• 펴낸날 : 2014-10-17
• ISBN : 9788958075431
• 십진분류 : 역사 > 지리 (980)
• 도서상태 : 정상
• 추천기관 :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
저자소개
지은이 : 김현아
시인. 로드스꼴라 대표. 1990년대 초부터 20여 년간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숱한 풍경과 사람들과 이야기들을 만났고, 그 고갱이들을 다양한 글 속에 담아내고 있다. 여행이 삶의 들숨이라면 글쓰기는 삶의 날숨이다.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한 시민네트워크 ‘나와 우리’의 대표를 역임했으며, 여행과 인문학의 행복한 만남을 추구하는 청소년 여행대안학교 ‘로드스꼴라’의 대표 교사로 활동 중이다. 1993년에 전태일문학상을 받았고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그곳에 가면 그 여자가 있다』 『그녀들에 대한 오래된 농담 혹은 거짓말』 『나의 여행 이력서』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책정보 및 내용요약
여행은 삶에 영향을 끼치는 차원을 넘어 때로 삶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꿔 놓는다. 예술혼을 잃어 가던 젊은 소설가를 세기의 문호로 재탄생시키기도 하고, 분방했던 의대생을 불멸의 혁명가로 변신시키기도 한다. 길 위에서의 만남과 사유와 깨달음이 없었다면 괴테는 거듭나지 못했을 것이고 체(Che) 또한 전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여행은 『파우스트』의 씨앗이고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뿌리다. 작가와 혁명가이기에 앞서, 그들은 모두 눈 밝은 여행자였다.
글쓴이 김현아는 시인이자 저술가다. 소수자들을 위한 NGO의 대표였고,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피해 실태를 세상에 알려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평화운동가이며, 청소년 여행대안학교 ‘로드스꼴라’를 이끄는 교육활동가이기도 하다. 경계를 넘나드는 그 열정적 활동의 출발점엔 언제나 여행이 있었다. 이력서에 단 하나의 직업만을 적어야 한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여행가’라는 세 글자를 써 넣을 것이다.
『나의 여행 이력서』는 그간 인문, 사회 분야 글쓰기에 주력해 온 그가 처음 내놓는 여행 이야기다. 인생의 고비마다 홀연히 나타났던 새로운 길들, 혹은 삶의 이정표. 이 책은 지난 20여 년간 걸어온 길들에 바치는 헌사이며, 길 위에 내려앉은 시간들의 선연한 기록이다.
글쓴이 김현아는 시인이자 저술가다. 소수자들을 위한 NGO의 대표였고,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피해 실태를 세상에 알려 우리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평화운동가이며, 청소년 여행대안학교 ‘로드스꼴라’를 이끄는 교육활동가이기도 하다. 경계를 넘나드는 그 열정적 활동의 출발점엔 언제나 여행이 있었다. 이력서에 단 하나의 직업만을 적어야 한다면 그는 망설임 없이 ‘여행가’라는 세 글자를 써 넣을 것이다.
『나의 여행 이력서』는 그간 인문, 사회 분야 글쓰기에 주력해 온 그가 처음 내놓는 여행 이야기다. 인생의 고비마다 홀연히 나타났던 새로운 길들, 혹은 삶의 이정표. 이 책은 지난 20여 년간 걸어온 길들에 바치는 헌사이며, 길 위에 내려앉은 시간들의 선연한 기록이다.
목차
-책을 내며
-프롤로그
1장 중국
세상의 규모를 보다, 흘깃 / 기원전의 사람을 만나다 / 북쪽에서 귀인을 만나리라 / 불온과 순수 사이 / 봄날 꿈속의 나비, 1967년생
2장 유럽
프라하, 시간을 묻다 / 피해 갈 수 있다면 어찌 그것이 사랑이리오 / 베르사유의 장미
3장 아프리카
안녕 아프리카, 안녕 청춘 / 질투는 인류의 힘 / 수피아, 나의 소녀 / 응고롱고르의 주민들 /
고릴라를 찾아서 /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4장 인도
무엇을 볼 수 있을까 / 불가촉천민들의 땅 / 둥게스와리 아이들 / 마을들 / 오생五生의 기억 /
강江의 저편 / 어떤 기억
5장 네팔
더러운 것과 더럽지 않은 것 / 지독한 농담에서 마음의 고향까지 / 추방된 사람 미누
6장 일본 : 교토 스케치
일곱 개의 편린으로 만나는 교토 / 천 년의 꿈 : 히라노 신사 / 그 여자네 집 : 대지릉 /
쇼균의 눈물 : 기요미즈데라 / 누군들 이름이 없었으랴 : 교류지 / 술 고픈 이야기 : 마쯔오 신사에서 / 도게쓰 교에서 쓴 편지
7장 베트남 : 세 가지 이야기
짧은 엽서들 / 응옥 이야기 / 귀신 이야기 / 지미 문 이야기
-에필로그
-어쩌면 다시 프롤로그
-프롤로그
1장 중국
세상의 규모를 보다, 흘깃 / 기원전의 사람을 만나다 / 북쪽에서 귀인을 만나리라 / 불온과 순수 사이 / 봄날 꿈속의 나비, 1967년생
2장 유럽
프라하, 시간을 묻다 / 피해 갈 수 있다면 어찌 그것이 사랑이리오 / 베르사유의 장미
3장 아프리카
안녕 아프리카, 안녕 청춘 / 질투는 인류의 힘 / 수피아, 나의 소녀 / 응고롱고르의 주민들 /
고릴라를 찾아서 /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4장 인도
무엇을 볼 수 있을까 / 불가촉천민들의 땅 / 둥게스와리 아이들 / 마을들 / 오생五生의 기억 /
강江의 저편 / 어떤 기억
5장 네팔
더러운 것과 더럽지 않은 것 / 지독한 농담에서 마음의 고향까지 / 추방된 사람 미누
6장 일본 : 교토 스케치
일곱 개의 편린으로 만나는 교토 / 천 년의 꿈 : 히라노 신사 / 그 여자네 집 : 대지릉 /
쇼균의 눈물 : 기요미즈데라 / 누군들 이름이 없었으랴 : 교류지 / 술 고픈 이야기 : 마쯔오 신사에서 / 도게쓰 교에서 쓴 편지
7장 베트남 : 세 가지 이야기
짧은 엽서들 / 응옥 이야기 / 귀신 이야기 / 지미 문 이야기
-에필로그
-어쩌면 다시 프롤로그
편집자 추천글
여행하는 삶, 삶을 창조한 여행
세상의 한 축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던 90년대 초반, 몰락해 가는 청춘의 이상(理想)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던 20대 여자가 막막함과 기대감을 함께 품은 채 중국 여행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본 건 가늠할 수 없이 넓은 세상과 그보다도 더 아득한 인간의 욕망. 디아스포라(diaspora)로 살아가는 조선족과의 만남을 통해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를 고민하고, 불온과 순수가 뒤섞였던 문화혁명을 되짚으며 희망과 절망에 대해 생각하고, 동갑내기 가이드와의 우스꽝스런 조우 속에서 한 세대의 동시성과 비동시성을 깨닫는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가로서의 삶. 낯선 곳에서의 고독을 꿈꾸며 찾아갔지만 오히려 중국보다도 더 익숙했던 유럽에서 비로소 자기 내부의 문화적 층위들을 발견하고, 인간에 대한 환멸이 엄습하던 때 찾아갔던 아프리카에서는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될 ‘오래된 미래’를 목격한다. 바람처럼 세상의 광장과 들판과 골목들을 떠도는 동안, 질문 하나가 화두처럼 떠오른다. 불편한 장면보다는 오히려 지독히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쳤을 때 통증처럼 온몸으로 번지던 질문. 나만 행복해도 되는가! 나만 자유로워도 되는가!
“그러다 만나게 되었어. 해거름이 되어도 부르는 이 없는 아이들, 의지와 상관없이 임신을 하는 소녀들,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어미들, 전쟁, 기아, 가난, 성폭력, 아동노동…. 가이드북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발걸음 닿는 곳마다 마주치게 되는 세계의 풍경들.”
그 풍경의 한복판에 첫 번째 이정표가 있었다. 화살표가 가리킨 곳은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그의 여행은 새로운 길로 들어섰고, 길은 매번 새로운 길로 이어졌다. 네팔 여행은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NGO 활동의 연장이었고, 베트남 여행은 ‘학살’이라는 고통스런 기억을 수십 년째 껴안고 사는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뒤늦게나마 귀 기울이기 위해서였다. 그 여정들은 그가 세상을 구경하는 여행자에서 세상을 바꾸는 여행자로 변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설레었으나 종종 혹독했을 그 길들을 하나로 이어준 건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세상을 바꾸려는 열망이다. 이 책은 길 위에서의 사유와 실천이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한 인간이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나’에서 ‘우리’로, 과거에서 미래로, 개인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여행의 점층법’이다.
“모든 것이 스승이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랑과 사랑 아닌 것, 생과 생 이전 혹은 이후, 그 모든 것들이 날 가르쳤다. 찰나찰나.”
여행인문학 또는 인문적 여행
좋은 여행을 가능케 하는 건 여행에 들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의 밀도일 것이다. 눈으로 본 것들의 목록보다 중요한 건 그곳에서의 생각의 깊이와 느낌의 온도다. 이곳과 저곳, 과거와 현재, 타자(他者)와 내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 통로를 찾아내는 것. 바로 그게 인문적 여행이고 여행인문학이다.
글쓴이는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와 인간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설처럼 엮어 낸다. 중국 고대사, 유럽 혁명사, 한반도와 일본의 문명교류사를 유장하게 들려주고, 역사 속 인물들이 겪었을 희노애락까지도 섬세하게 재현해 낸다. 시인답게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과 이해를 내비친다.
“카미유가 조금만 더 나이 들어 로댕을 만났더라면, 스무 살 그토록 순결하고 그토록 오만하고 그토록 맹목적인 그 청춘의 시간만 피했더라면, 그래서 초록이 지치면 단풍이 든다는 걸 알았더라면, 재능이 악몽이 되는 건 피할 수 있었을까.”
“체코는 밀란 쿤데라의 나라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니, 라고 중얼거렸다, 처음 그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최루탄과 페퍼포그, 실종된 선배, 자살한 동기, 수인번호 2384, 감옥, 고문, 위장취업,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문득, 어느 날, 가벼워지고 싶었다. 몰다우 강 위에 서서 생각했다. 그도 그러고 싶었던 거야, 꽃잎처럼 가볍게 저 강물 위로 사뿐 떨어져 내리고 싶었던 거야, 어느 날 문득.”
타국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되돌아보는 일 또한 빠뜨리지 않는다. 가령 중국 대륙을 뒤흔들었던 문화혁명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장이모우, 첸카이거, 위화, 다이호우잉 들은 혹독했던 시간을 치열하게 응시하고 차갑게 해석하고 섬세하게 재구성한다. 숭고한 듯했으나 비열했던, 고결한 듯했으나 역겨웠던, 희망을 말하고자 했으나 절망이 되어 버린 이상한 시간! 무엇을 이야기하든 한꺼번에 딸려 오는 분노와 증오, 죄의식, 슬픔, 비애, 수치, 좌절, 연민의 덩어리들을 그들은 꼼꼼히 만져 보고 무연히 응시하고 촘촘히 기록한다.”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비루한 것에서 고결한 것까지, 역겨운 것에서 투명한 것까지 뒤집어 보고 엎어 보고 빨아 보고 깨물어 보고 삼켜 보고 뱉어 볼 때 비로소 읽혀지는 시간들. 광주, 4.3제주, 동학, 우리가 서둘러 박물관으로 보내 버린 시간들을 그들은 여전히 끈질기게 붙잡고 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떨어지는 눈물, 재채기를 통해 튀어나오는 기억의 파편, 가래로 끓는 이야기 도처에 흐르는데. 그 봄 여름 가을 겨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몸의 구멍을 통해 가지를 벋는데.”
그가 여행하는 이유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같은 여성들에 대한 글쓴이의 관심과 애정이다. 아프리카, 베트남, 인도, 그 밖의 많은 여행지에서 만났던 여인들과 소녀들. 가난하고 남루하지만 결코 비루하지 않은 그녀들에 대한 강한 연대의식이 책 곳곳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뜨거운 나라에 태어났다면,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북소리가 가슴을 뒤흔들고 저토록 우아하고 탄력 있는 엉덩이를 마음껏 흔들며 춤을 추는 곳에 태어났더라면 나도 따뚜처럼 다섯 아이를 낳고도 저렇게 흐드드득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 가족들의 목숨값으로 고속도로를 닦고 경제개발을 한 나라에서 온 나에게, 그녀는 파근파근한 고구마를 삶아 주고 고소한 땅콩을 두 주머니 가득 넣어 주었다. 그날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그녀의 자매가 되리라. 고샅을 나오다 돌아보니 그녀가 웃었다. 손을 흔들며.”
“세상엔 아흔아홉 가지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네가 꿈꾸는 것 이상의 세상이 있다는 걸 어떻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수피아, 나의 소녀.”
산문과 시, 편지 등을 적절히 활용하며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이어지는 글들. 까닭 없이 감금되었던 네팔 여인 찬드라와 추방된 네팔인 미누 이야기에서 차츰 고조되던 글쓴이의 호흡은 베트남 편에 이르러 마침내 절정으로 치닫는다. 차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 읽는 사람보다 수십 배는 더 고통스러웠을 그런 글쓰기를 굳이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책 속 어딘가에 그에 대한 답변이 실려 있다.
“국경을 넘나들던 사람들, 저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요. 여행 중에 만난 따스한 미소, 번지는 눈물, 속으로 삼켜지는 이야기, 그런 것들, 고난의 시간을 산 이들, 마음의 풍파를 겪는 이들, 저 강물의 수달, 저 창공의 까마귀,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이야기, 그런 것들, 이곳이 아닌 저곳에 전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요.”
본문 속으로
“땅의 끝까지 6시간만 달리면 가는 나라, 옹기종기 아옹다옹 한 다리 건너 두 다리면 알음알음 사돈의 팔촌이라도 되는 반도의 남쪽과는, 달랐다. 비로소 세상의 규모를 직면한 느낌이었다.” (28쪽)
“민족이라는 말 속에 어떤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게 된 뒤부터 민족 혹은 민족주의라는 말은 늘 조금 불편했다. ‘같은 민족’ 어쩌고 하는 표현 속에 얼마나 많은 경계와 소외와 차별이 촘촘히 존재하는지 익히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디아스포라를 만나면 가슴 한쪽이 슬몃 사무친다. 운권의 할아버지를 만난 그 밤 이후, 자신의 민족에게 무관심하지 않으면서도 세계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길, 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46쪽)
“이 뜨거운 나라에 태어났다면,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북소리가 가슴을 뒤흔들고 저토록 우아하고 탄력 있는 엉덩이를 마음껏 흔들며 춤을 추는 곳에 태어났더라면 나도 따뚜처럼 다섯 아이를 낳고도 저렇게 흐드드득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61쪽)
“유럽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고무친, 내 이름자 아는 이 하나 없는 곳, 태어나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 틈에서 서툴게 흐느적거리며 유영하고 싶었다.” (68쪽)
“나는 태고를 모릅니다. 시간이 처음 생겨나던 그때를 모릅니다. 그러나 세렝게티에서 나는 시간을 봅니다. 아주 오래전, 평원이 처음 생겨난 이후 이곳에 쌓인 시간들을 봅니다. 어쩌면 시간이 닫힐 때도 나는 세렝게티를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103쪽)
“아프리카에 오니 흑인들이 멋있다. 여자들은 예쁘고 노인들의 눈은 깊다. 다리가 긴 남자들은 의젓해 보인다. 제자리에서, 그들의 땅에서 흑인들은 멋있다.” (124쪽)
“인도는 마지막 여행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내 여행은 인도에서 다시 시작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아열대의 공기, 꽃과 차의 향기, 신전의 지붕들, 사리를 휘감고 들판 너머로 사라져 가는 여인들, 을 만날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또 무엇을 볼 수 있을까.” (135쪽)
“신사의 오래된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면 살짝 꼬리뼈 있던 자리가 저릿하다. 2천 년도 더 전에 노마드의 삶을 살았던 이주민들. 그들이 가졌던 불굴의 용기 혹은 절망 혹은 그리움, 어쩌면 꼬리뼈의 흔적이 닮았을.” (202쪽)
“너무 짙푸르러 마음이 베일 것만 같은 산천, 저 수많은 오토바이와 시클로가 다 꿈이라 하더라도, 하얀 아오자이의 여인들마저 꿈이라 하더라도 아아, 어찌할 것인가, 저 짙푸른 녹음을.” (236쪽)
“죽은 사람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중요한 건 그 한 사람 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한 사람 말고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264쪽)
“지배적인 기억의 권력들과 죽어서도 싸우는 해방공간과 4.3제주, 한국전쟁과 광주에서 억울하게 죽어 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아직도 붉은 사탕수수밭을 헤매고 다니는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 죽음을 넘어서까지 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말에 나는 귀 기울이는가. 산 것과 죽은 것의 경계, 물질과 물질 아닌 것의 경계, 영과 육의 경계를 휘청이며.” (276쪽)
“실크로드, 낭만적인 이름이지만 사실은 목숨을 걸고 오갔던 길, 저 큰 고개 너머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인류의 호기심과 꿈과 욕망이 만들어 낸 탐험의 길, 두렵지만 설레었던, 설레었지만 두려웠던.” (306쪽)
세상의 한 축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던 90년대 초반, 몰락해 가는 청춘의 이상(理想)을 고통스럽게 지켜보던 20대 여자가 막막함과 기대감을 함께 품은 채 중국 여행길에 오른다. 그곳에서 본 건 가늠할 수 없이 넓은 세상과 그보다도 더 아득한 인간의 욕망. 디아스포라(diaspora)로 살아가는 조선족과의 만남을 통해 민족주의와 세계주의를 고민하고, 불온과 순수가 뒤섞였던 문화혁명을 되짚으며 희망과 절망에 대해 생각하고, 동갑내기 가이드와의 우스꽝스런 조우 속에서 한 세대의 동시성과 비동시성을 깨닫는다.
그렇게 시작된 여행가로서의 삶. 낯선 곳에서의 고독을 꿈꾸며 찾아갔지만 오히려 중국보다도 더 익숙했던 유럽에서 비로소 자기 내부의 문화적 층위들을 발견하고, 인간에 대한 환멸이 엄습하던 때 찾아갔던 아프리카에서는 새로운 희망의 불씨가 될 ‘오래된 미래’를 목격한다. 바람처럼 세상의 광장과 들판과 골목들을 떠도는 동안, 질문 하나가 화두처럼 떠오른다. 불편한 장면보다는 오히려 지독히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쳤을 때 통증처럼 온몸으로 번지던 질문. 나만 행복해도 되는가! 나만 자유로워도 되는가!
“그러다 만나게 되었어. 해거름이 되어도 부르는 이 없는 아이들, 의지와 상관없이 임신을 하는 소녀들,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어미들, 전쟁, 기아, 가난, 성폭력, 아동노동…. 가이드북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발걸음 닿는 곳마다 마주치게 되는 세계의 풍경들.”
그 풍경의 한복판에 첫 번째 이정표가 있었다. 화살표가 가리킨 곳은 인도의 불가촉천민 마을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그의 여행은 새로운 길로 들어섰고, 길은 매번 새로운 길로 이어졌다. 네팔 여행은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NGO 활동의 연장이었고, 베트남 여행은 ‘학살’이라는 고통스런 기억을 수십 년째 껴안고 사는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에 뒤늦게나마 귀 기울이기 위해서였다. 그 여정들은 그가 세상을 구경하는 여행자에서 세상을 바꾸는 여행자로 변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설레었으나 종종 혹독했을 그 길들을 하나로 이어준 건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세상을 바꾸려는 열망이다. 이 책은 길 위에서의 사유와 실천이 과연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또한 한 인간이 여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의 최대치를 보여준다. ‘나’에서 ‘우리’로, 과거에서 미래로, 개인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여행의 점층법’이다.
“모든 것이 스승이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인간과 인간 아닌 것, 사랑과 사랑 아닌 것, 생과 생 이전 혹은 이후, 그 모든 것들이 날 가르쳤다. 찰나찰나.”
여행인문학 또는 인문적 여행
좋은 여행을 가능케 하는 건 여행에 들인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의 밀도일 것이다. 눈으로 본 것들의 목록보다 중요한 건 그곳에서의 생각의 깊이와 느낌의 온도다. 이곳과 저곳, 과거와 현재, 타자(他者)와 내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 통로를 찾아내는 것. 바로 그게 인문적 여행이고 여행인문학이다.
글쓴이는 여행지의 역사와 문화와 인간에 얽힌 이야기들을 소설처럼 엮어 낸다. 중국 고대사, 유럽 혁명사, 한반도와 일본의 문명교류사를 유장하게 들려주고, 역사 속 인물들이 겪었을 희노애락까지도 섬세하게 재현해 낸다. 시인답게 예술가들의 삶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과 이해를 내비친다.
“카미유가 조금만 더 나이 들어 로댕을 만났더라면, 스무 살 그토록 순결하고 그토록 오만하고 그토록 맹목적인 그 청춘의 시간만 피했더라면, 그래서 초록이 지치면 단풍이 든다는 걸 알았더라면, 재능이 악몽이 되는 건 피할 수 있었을까.”
“체코는 밀란 쿤데라의 나라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니, 라고 중얼거렸다, 처음 그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최루탄과 페퍼포그, 실종된 선배, 자살한 동기, 수인번호 2384, 감옥, 고문, 위장취업,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문득, 어느 날, 가벼워지고 싶었다. 몰다우 강 위에 서서 생각했다. 그도 그러고 싶었던 거야, 꽃잎처럼 가볍게 저 강물 위로 사뿐 떨어져 내리고 싶었던 거야, 어느 날 문득.”
타국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오늘을 되돌아보는 일 또한 빠뜨리지 않는다. 가령 중국 대륙을 뒤흔들었던 문화혁명에 대해 그는 이렇게 쓰고 있다.
“장이모우, 첸카이거, 위화, 다이호우잉 들은 혹독했던 시간을 치열하게 응시하고 차갑게 해석하고 섬세하게 재구성한다. 숭고한 듯했으나 비열했던, 고결한 듯했으나 역겨웠던, 희망을 말하고자 했으나 절망이 되어 버린 이상한 시간! 무엇을 이야기하든 한꺼번에 딸려 오는 분노와 증오, 죄의식, 슬픔, 비애, 수치, 좌절, 연민의 덩어리들을 그들은 꼼꼼히 만져 보고 무연히 응시하고 촘촘히 기록한다.”
“밑바닥에서 꼭대기까지, 비루한 것에서 고결한 것까지, 역겨운 것에서 투명한 것까지 뒤집어 보고 엎어 보고 빨아 보고 깨물어 보고 삼켜 보고 뱉어 볼 때 비로소 읽혀지는 시간들. 광주, 4.3제주, 동학, 우리가 서둘러 박물관으로 보내 버린 시간들을 그들은 여전히 끈질기게 붙잡고 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떨어지는 눈물, 재채기를 통해 튀어나오는 기억의 파편, 가래로 끓는 이야기 도처에 흐르는데. 그 봄 여름 가을 겨울,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 몸의 구멍을 통해 가지를 벋는데.”
그가 여행하는 이유
책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같은 여성들에 대한 글쓴이의 관심과 애정이다. 아프리카, 베트남, 인도, 그 밖의 많은 여행지에서 만났던 여인들과 소녀들. 가난하고 남루하지만 결코 비루하지 않은 그녀들에 대한 강한 연대의식이 책 곳곳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 뜨거운 나라에 태어났다면,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북소리가 가슴을 뒤흔들고 저토록 우아하고 탄력 있는 엉덩이를 마음껏 흔들며 춤을 추는 곳에 태어났더라면 나도 따뚜처럼 다섯 아이를 낳고도 저렇게 흐드드득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 가족들의 목숨값으로 고속도로를 닦고 경제개발을 한 나라에서 온 나에게, 그녀는 파근파근한 고구마를 삶아 주고 고소한 땅콩을 두 주머니 가득 넣어 주었다. 그날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녀는 나에게 다가와 꽃이 되었다. 그녀가 나의 이름을 부를 때 나는 그녀의 자매가 되리라. 고샅을 나오다 돌아보니 그녀가 웃었다. 손을 흔들며.”
“세상엔 아흔아홉 가지 삶의 방식이 있다는 걸, 네가 꿈꾸는 것 이상의 세상이 있다는 걸 어떻게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수피아, 나의 소녀.”
산문과 시, 편지 등을 적절히 활용하며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신랄하게 이어지는 글들. 까닭 없이 감금되었던 네팔 여인 찬드라와 추방된 네팔인 미누 이야기에서 차츰 고조되던 글쓴이의 호흡은 베트남 편에 이르러 마침내 절정으로 치닫는다. 차마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이야기들. 읽는 사람보다 수십 배는 더 고통스러웠을 그런 글쓰기를 굳이 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책 속 어딘가에 그에 대한 답변이 실려 있다.
“국경을 넘나들던 사람들, 저도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요. 여행 중에 만난 따스한 미소, 번지는 눈물, 속으로 삼켜지는 이야기, 그런 것들, 고난의 시간을 산 이들, 마음의 풍파를 겪는 이들, 저 강물의 수달, 저 창공의 까마귀, 흔들리는 나뭇잎들의 이야기, 그런 것들, 이곳이 아닌 저곳에 전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요.”
본문 속으로
“땅의 끝까지 6시간만 달리면 가는 나라, 옹기종기 아옹다옹 한 다리 건너 두 다리면 알음알음 사돈의 팔촌이라도 되는 반도의 남쪽과는, 달랐다. 비로소 세상의 규모를 직면한 느낌이었다.” (28쪽)
“민족이라는 말 속에 어떤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알게 된 뒤부터 민족 혹은 민족주의라는 말은 늘 조금 불편했다. ‘같은 민족’ 어쩌고 하는 표현 속에 얼마나 많은 경계와 소외와 차별이 촘촘히 존재하는지 익히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디아스포라를 만나면 가슴 한쪽이 슬몃 사무친다. 운권의 할아버지를 만난 그 밤 이후, 자신의 민족에게 무관심하지 않으면서도 세계주의자가 될 수 있는 길, 에 대해 가끔 생각한다.” (46쪽)
“이 뜨거운 나라에 태어났다면,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북소리가 가슴을 뒤흔들고 저토록 우아하고 탄력 있는 엉덩이를 마음껏 흔들며 춤을 추는 곳에 태어났더라면 나도 따뚜처럼 다섯 아이를 낳고도 저렇게 흐드드득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61쪽)
“유럽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사고무친, 내 이름자 아는 이 하나 없는 곳, 태어나 처음 보는 낯선 얼굴들 틈에서 서툴게 흐느적거리며 유영하고 싶었다.” (68쪽)
“나는 태고를 모릅니다. 시간이 처음 생겨나던 그때를 모릅니다. 그러나 세렝게티에서 나는 시간을 봅니다. 아주 오래전, 평원이 처음 생겨난 이후 이곳에 쌓인 시간들을 봅니다. 어쩌면 시간이 닫힐 때도 나는 세렝게티를 기억할지 모르겠습니다.” (103쪽)
“아프리카에 오니 흑인들이 멋있다. 여자들은 예쁘고 노인들의 눈은 깊다. 다리가 긴 남자들은 의젓해 보인다. 제자리에서, 그들의 땅에서 흑인들은 멋있다.” (124쪽)
“인도는 마지막 여행지가 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내 여행은 인도에서 다시 시작될 거 같은 예감이 든다. 아열대의 공기, 꽃과 차의 향기, 신전의 지붕들, 사리를 휘감고 들판 너머로 사라져 가는 여인들, 을 만날 수 있겠지. 그리고 나는 또 무엇을 볼 수 있을까.” (135쪽)
“신사의 오래된 나무 기둥에 등을 기대면 살짝 꼬리뼈 있던 자리가 저릿하다. 2천 년도 더 전에 노마드의 삶을 살았던 이주민들. 그들이 가졌던 불굴의 용기 혹은 절망 혹은 그리움, 어쩌면 꼬리뼈의 흔적이 닮았을.” (202쪽)
“너무 짙푸르러 마음이 베일 것만 같은 산천, 저 수많은 오토바이와 시클로가 다 꿈이라 하더라도, 하얀 아오자이의 여인들마저 꿈이라 하더라도 아아, 어찌할 것인가, 저 짙푸른 녹음을.” (236쪽)
“죽은 사람의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중요한 건 그 한 사람 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한 사람 말고 무엇이 중요하단 말인가.” (264쪽)
“지배적인 기억의 권력들과 죽어서도 싸우는 해방공간과 4.3제주, 한국전쟁과 광주에서 억울하게 죽어 간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아직도 붉은 사탕수수밭을 헤매고 다니는 베트남 사람들의 이야기, 죽음을 넘어서까지 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말에 나는 귀 기울이는가. 산 것과 죽은 것의 경계, 물질과 물질 아닌 것의 경계, 영과 육의 경계를 휘청이며.” (276쪽)
“실크로드, 낭만적인 이름이지만 사실은 목숨을 걸고 오갔던 길, 저 큰 고개 너머에는 무엇이 살고 있을까 인류의 호기심과 꿈과 욕망이 만들어 낸 탐험의 길, 두렵지만 설레었던, 설레었지만 두려웠던.” (30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