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브 광장의 작은 책방 (에릭 드 케르멜 장편소설 | 원제 La Libraire de la Place aux Herb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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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은이 : 에릭 드 케르멜(Eric de Kerme)
• 옮긴이 : 강현주
• 출판사 : 뜨인돌
• 가격 : 15,000원
• 책꼴/쪽수 :
134x210, 344쪽
• 펴낸날 : 2018-08-10
• ISBN : 9788958076926
• 십진분류 : 문학 > 프랑스문학 (860)
• 도서상태 : 정상
• 추천기관 :
서울시교육청도서관 사서추천도서
저자소개
지은이 : 에릭 드 케르멜(Eric de Kerme)
프랑스의 저널리스트이자 소설가. 브르타뉴 지역색이 물씬 풍기는 이름을 갖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로코와 남아메리카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지금은 에르브 광장이 있는 남프랑스의 위제에 정착하여 살고 있다. 이 세상이 좀 더 따뜻한 곳이 되기를 꿈꾸는 휴머니스트이며 <야생의 땅 Terre Sauvage> <알프스 매거진 Alpes Magazine> 등의 잡지를 발행하는 생태주의자이기도 하다. 『에르브 광장의 작은 책방』은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옮긴이 : 강현주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불어 및 영어 전문번역가로 일하고 있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문둥이 성자 다미안』 『내 인생의 자전거』 『인간관계의 심리학』 『산은 내게 말한다』 『사랑의 속도를 늦추어라』 『고스트 컴퍼니』 『엄마, 세상에서 가장 축복받은 이름』 『철학자의 여행법』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을 번역했다.
목차
에릭 오르세나의 서문
나탈리__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클로에__자유를 향한 충동
자크__고독한 산책자의 명상
필립__지칠 줄 모르는 여행자
레일라__글에서 나를 찾다
바스티앙__침묵의 메신저
타릭__형제의 책
베로니카 수녀__소박한 행복
아르튀르__“너 자신을 되찾아라”
솔랑즈__비밀의 정원
에필로그
* 에르브 광장 서점의 책장 풍경
나탈리__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클로에__자유를 향한 충동
자크__고독한 산책자의 명상
필립__지칠 줄 모르는 여행자
레일라__글에서 나를 찾다
바스티앙__침묵의 메신저
타릭__형제의 책
베로니카 수녀__소박한 행복
아르튀르__“너 자신을 되찾아라”
솔랑즈__비밀의 정원
에필로그
* 에르브 광장 서점의 책장 풍경
편집자 추천글
남프랑스 소도시 위제의 광장 모퉁이 책방
서점 주인과 손님들이 엮어가는 책과 삶과 세상 이야기
누군가의 독서에 관여하는 것은 그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책과 삶의 관계는 그만큼 깊고 밀접하다. 좋았던 책과 별로였던 책, 읽고 싶은 책과 읽기 싫은 책, 다 읽은 책과 읽다 만 책을 모아서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들 각자의 초상화가 될 것이다. 책을 매개로 한 우연한 만남과 그로 인한 필연적 변화가 가장 빈번하게, 가장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 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책방이다.
『에르브 광장의 작은 책방』은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도시 위제의 광장 모퉁이 서점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이다. 문학교사 출신의 서점 주인 나탈리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책을 권한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그러나 필연적으로 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만난 아홉 사람의 이야기가 작품 속에 담겨 있다. 책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이윽고 삶의 빛깔까지 바뀌어가는 사람들! 프랑스 소설 특유의 감각적 문체로 쓰인 이 작품 속에서 독자들은 “책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새로운 대답을 발견하게 된다.
애서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책 이야기들로 빼곡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글쓴이는 전쟁, 빈곤, 생태, 교육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주제들을 각각의 이야기 속에 능숙하게 녹여낸다. 등장인물들의 개인적 삶이 소설의 씨줄이라면, 그들 삶의 배경이 되는 여러 사회문제들은 소설의 날줄인 셈이다. 서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 아홉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단편집이나 연작소설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우연히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들
이미 쓰인 책 위에 새롭게 덧씌워지는 아홉 편의 이야기
서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남자, 여자, 어린이, 노인, 불행한 사람, 보수주의자, 유쾌한 사람, 살인자, 거리의 석학, 매혹적인 우울증 환자, 다리를 절지만 명석한 시인, 냉담한 연인들, 움직이지 않는 여행자, 벌을 받고 있는 미식가 등등. 개중에는 전문가 뺨칠 정도로 수준 높은 독자들도 있지만 나탈리의 눈길을 끄는 건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그녀가 눈여겨보는 것은 각각의 손님들이 책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시대극에서 툭 튀어나온 듯 고전적인 차림새의 모녀. 그들의 구매 목록은 더할 나위 없이 고급스럽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픈 딸의 눈빛에서 나탈리는 소녀의 남모를 갈증을 읽는다. 아름다운 시와 산문들을 줄줄이 읊어대는 젊은 우체부와의 대화 속에서는 우편물 가방 속에 꼭꼭 숨겨놓은 청년의 꿈을 읽는다. 아홉 명의 주인공들 모두 그렇게 저마다의 숨은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책을 매개로 드러나고 책과 함께 펼쳐지는, 그리하여 또 하나의 책이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
“이미 인쇄된 책장 위로 또 다른 이야기가 쓰였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포개졌다. 내가 쓰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다.” (‘나탈리_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중)
저마다 아픈 손님들에게 책방 주인이 건네는
책이라는 이름의 묘약
서점은 독특한 공간이다. ‘책을 파는 상점’이라는 것만으로는 이 공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에릭 오르세나의 말대로 그곳은 돈 대신 꿈을 주고받는 ‘특별한 은행’이고, 은은한 종이 향기로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클리닉이기도 하다. 서점 주인 나탈리는 이 복합적인 공간의 수납원인 동시에 테라피스트인 셈이다.
나탈리의 손님들 중에는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맹으로 살아온 이민족 출신의 여성, 중동의 전쟁터에서 폭발 사고로 두 눈을 잃은 외인부대 용병…. 독서량은 많지만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소녀 역시 책 읽기에 장애가 있다는 점에서는 문맹이나 부상병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에르브 광장의 서점에서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책을 만나고, 읽고, 행복해한다. 나탈리가 그들에게 건넨 것은 단 하나였다. 네모난 처방전, 혹은 책이라는 이름의 묘약.
“나는 삶이 잃어버렸던 색깔을 되찾는 데에 때로는 아주 사소한 것들, 혹은 몇 권의 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녀에게 미소를 보냈다.” (‘클로에_자유를 향한 충동’ 중)
책과 인간, 혹은 책과 삶의 깊디깊은 관계
“네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알려주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줄게.”
소설을 중간쯤 읽다 보면 나탈리의 남편이 손수 그린 ‘책나무’를 아내에게 선물하는 대목이 나온다. 고전물과 현대물, 소설과 에세이, 국내서와 번역서 등 그녀가 읽어온 다양한 책들을 특징별로 배치한 그 수형도(樹型圖)는 곧 나탈리의 초상화이며, 나탈리라는 인간 그 자체이기도 하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상대가 읽은 책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생사를 초탈한 듯 보이는 어느 순례자의 챕터(자크_고독한 산책자의 명상)에서 독자들은 삶과 죽음이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그가 읽은 책들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다. 정기적으로 누군가에게 책을 발송하는 한 남자의 챕터(바스티앙_침묵의 메신저)에서는 그 책들이 주인공의 삶에 새겨놓은 흔적들이 짙은 감동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면서, 글쓴이는 독자들이 오래 기억할 만한 한마디를 남긴다. 책과 인간, 혹은 책과 삶의 관계를 드러내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달리 찾기 힘들 것이다.
“네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알려주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줄게.” (‘필립_지칠 줄 모르는 여행자’ 중)
오직 책방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서점은 아주 특별한 연결의 장소다!”
특출한 인물이나 복잡한 사건이 없는 대신, 이 작품에는 오직 ‘책방’이라는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서점이 아니었다면 절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 서점이 아니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 그리고 서점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다다를 수 없었을 놀랍고 아름다운 결말들! 서문을 써준 프랑스의 대문호 에릭 오르세나가 서점이라는 공간을 가리켜 특별한 ‘장소’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서점은 무엇일까요? 그곳은 장소입니다. 빛과 열기의 장소, 공유와 신뢰의 장소, 유대감의 지리학. 연결의 장소.” (에릭 오르세나의 서문 중)
배경이 책방인 만큼 이 소설에는 수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그 책들 중에는 국내에 번역된 것도 있지만 아직 소개되지 않은 책들도 많다. 원서의 맨 뒤에는 본문에 등장하는 책들의 목록이 실려 있는데, 번역본에서는 그 책들의 국내 출간 여부와 서지사항을 꼼꼼하게 덧붙여놓았다. 책장을 덮기 전에 각 챕터별로 어떤 책들이 등장했는지 되짚어보면 이 특별한 소설의 여운을 조금 더 짙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의 글
서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주 특별한 은행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돈을 거래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꿈을 꾸고 자유를 갈구합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탐색하고 있는 아홉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들이 책을 펼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매혹적으로 들려줍니다.
그곳은 장소입니다. 빛과 열기의 장소, 공유와 신뢰의 장소, 유대감의 지리학. 연결의 장소.
사람들이 책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반대 또한 진실입니다. 책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초라하고 지루하고 단조로울까요? 오래되고 아름다운 위제라는 도시에, 아주 새로운 서점이 있었습니다.
(에릭 오르세나 | 프랑스 소설가)
■ 책 속으로
“이미 인쇄된 책장 위로 또 다른 이야기가 쓰였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포개졌다. 내가 쓰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다.” (29쪽)
“책이 흘러가는 여정과 우리 자신의 여정이 겹치는 부분이 생기고, 그럴 때 우리는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문득 그런 만남이 발생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따라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단지 읽었던 내용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61쪽)
“나는 삶이 잃어버렸던 색깔을 되찾는 데에 때로는 아주 사소한 것들, 혹은 몇 권의 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녀에게 미소를 보냈다.”(68쪽)
“그럴 때면 나는 ‘인시피트 키스(incipit kiss)’라 부르는 독특한 순간을 경험한다. ‘incipit’는 라틴어로 한 작품의 첫 단어, 첫 구절을 뜻한다. 몇몇 책의 첫 구절은 정말로 걸작이다. 그러면 우리는 마치 모종의 신비로운 힘에 사로잡힌 것처럼 책 속으로 돌진하게 된다. 첫 구절 키스! 이것은 실제의 첫 키스와 다르지 않다. 짭짤하고, 달콤하고, 부드럽고, 씁쓸하고, 물렁물렁하고, 격렬하고, 반항적이고, 힘겹고, 도둑맞은 기분이고, 충격적이고, 감각적이고, 이국적이고, 차갑고, 포근하고, 생생하다.” (75쪽)
“네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알려주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줄게.” (120쪽)
“아버지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마젤란의 전기를 읽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책과 함께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쇼몽의 루아르 강가에 위치한 정원에서, 간이 의자에 길게 누운 채로. (…) 사람들은 대개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고인의 눈을 감긴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을 감긴 것은 펼쳐진 책장이었다. 입관을 할 때까지 우리는 마젤란을 아버지의 얼굴 위에 그대로 두었다. 아버지가 슈테판 츠바이크와 대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155쪽)
“몸에 닿지 않으면서도 피부의 솜털 하나하나를 곧추세우는 그의 손길을 나는 강하게 느끼고 있다. 나뭇잎이 공중에서 천천히 나부낀 후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손을 내 성기 위에 살포시 올리면서, 남자는 반쯤 벌어진 내 입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허벅지를 살짝 벌린다. 내려앉은 나뭇잎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 눈을 떴다…. 바스티앙이었다.” (188쪽)
“나의 평온한 세상에,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시간을 초월한 듯한 이 작은 마을에 갑자기 ‘8시 뉴스’에나 나오는 아프가니스탄이 등장했다. 들것에 실린 채 피를 흘리는 군인이 나의 서점 한가운데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248쪽)
“서점 주인이나 독자로서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책은 때로 항우울제보다 훨씬 탁월한 치유 능력이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을 일깨워주는 것은 약이 아니라 책이다.” (317쪽)
“모든 인간은 신성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는, 인류의 백과사전을 한 장씩 계속 넘긴다는 기분으로, 길에서 마주치게 될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누군가가 내 작은 서점의 문을 밀고 들어올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내일 아침에 서점 문이 열리면 철학하는 농부, 이집트의 조각가, 황무지에서 수맥을 찾는 사람, 혹은 러시아 왕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334쪽)
서점 주인과 손님들이 엮어가는 책과 삶과 세상 이야기
누군가의 독서에 관여하는 것은 그의 인생에 개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책과 삶의 관계는 그만큼 깊고 밀접하다. 좋았던 책과 별로였던 책, 읽고 싶은 책과 읽기 싫은 책, 다 읽은 책과 읽다 만 책을 모아서 한 장의 그림으로 표현한다면 그것은 곧 우리들 각자의 초상화가 될 것이다. 책을 매개로 한 우연한 만남과 그로 인한 필연적 변화가 가장 빈번하게, 가장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공간이 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책방이다.
『에르브 광장의 작은 책방』은 남프랑스의 아름다운 도시 위제의 광장 모퉁이 서점을 무대로 한 장편소설이다. 문학교사 출신의 서점 주인 나탈리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이야기를 듣고, 많은 책을 권한다. 그리하여 본의 아니게, 그러나 필연적으로 그들의 삶 깊숙이 들어가게 된다. 그렇게 만난 아홉 사람의 이야기가 작품 속에 담겨 있다. 책과 더불어 울고 웃으며 이윽고 삶의 빛깔까지 바뀌어가는 사람들! 프랑스 소설 특유의 감각적 문체로 쓰인 이 작품 속에서 독자들은 “책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한 새로운 대답을 발견하게 된다.
애서가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책 이야기들로 빼곡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저널리스트이기도 한 글쓴이는 전쟁, 빈곤, 생태, 교육 등 현대사회의 다양한 주제들을 각각의 이야기 속에 능숙하게 녹여낸다. 등장인물들의 개인적 삶이 소설의 씨줄이라면, 그들 삶의 배경이 되는 여러 사회문제들은 소설의 날줄인 셈이다. 서로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 아홉 편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단편집이나 연작소설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우연히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들
이미 쓰인 책 위에 새롭게 덧씌워지는 아홉 편의 이야기
서점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 남자, 여자, 어린이, 노인, 불행한 사람, 보수주의자, 유쾌한 사람, 살인자, 거리의 석학, 매혹적인 우울증 환자, 다리를 절지만 명석한 시인, 냉담한 연인들, 움직이지 않는 여행자, 벌을 받고 있는 미식가 등등. 개중에는 전문가 뺨칠 정도로 수준 높은 독자들도 있지만 나탈리의 눈길을 끄는 건 그런 사람들이 아니다. 그녀가 눈여겨보는 것은 각각의 손님들이 책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다.
시대극에서 툭 튀어나온 듯 고전적인 차림새의 모녀. 그들의 구매 목록은 더할 나위 없이 고급스럽지만, 어딘지 모르게 슬픈 딸의 눈빛에서 나탈리는 소녀의 남모를 갈증을 읽는다. 아름다운 시와 산문들을 줄줄이 읊어대는 젊은 우체부와의 대화 속에서는 우편물 가방 속에 꼭꼭 숨겨놓은 청년의 꿈을 읽는다. 아홉 명의 주인공들 모두 그렇게 저마다의 숨은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책을 매개로 드러나고 책과 함께 펼쳐지는, 그리하여 또 하나의 책이 되는 아름다운 이야기들.
“이미 인쇄된 책장 위로 또 다른 이야기가 쓰였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포개졌다. 내가 쓰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다.” (‘나탈리_새로운 삶을 시작하다’ 중)
저마다 아픈 손님들에게 책방 주인이 건네는
책이라는 이름의 묘약
서점은 독특한 공간이다. ‘책을 파는 상점’이라는 것만으로는 이 공간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에릭 오르세나의 말대로 그곳은 돈 대신 꿈을 주고받는 ‘특별한 은행’이고, 은은한 종이 향기로 사람들의 영혼을 치유하는 클리닉이기도 하다. 서점 주인 나탈리는 이 복합적인 공간의 수납원인 동시에 테라피스트인 셈이다.
나탈리의 손님들 중에는 책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문맹으로 살아온 이민족 출신의 여성, 중동의 전쟁터에서 폭발 사고로 두 눈을 잃은 외인부대 용병…. 독서량은 많지만 즐거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소녀 역시 책 읽기에 장애가 있다는 점에서는 문맹이나 부상병과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에르브 광장의 서점에서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책을 만나고, 읽고, 행복해한다. 나탈리가 그들에게 건넨 것은 단 하나였다. 네모난 처방전, 혹은 책이라는 이름의 묘약.
“나는 삶이 잃어버렸던 색깔을 되찾는 데에 때로는 아주 사소한 것들, 혹은 몇 권의 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녀에게 미소를 보냈다.” (‘클로에_자유를 향한 충동’ 중)
책과 인간, 혹은 책과 삶의 깊디깊은 관계
“네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알려주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줄게.”
소설을 중간쯤 읽다 보면 나탈리의 남편이 손수 그린 ‘책나무’를 아내에게 선물하는 대목이 나온다. 고전물과 현대물, 소설과 에세이, 국내서와 번역서 등 그녀가 읽어온 다양한 책들을 특징별로 배치한 그 수형도(樹型圖)는 곧 나탈리의 초상화이며, 나탈리라는 인간 그 자체이기도 하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상대가 읽은 책만으로도 그가 누구인지를 단번에 알 수 있다.
생사를 초탈한 듯 보이는 어느 순례자의 챕터(자크_고독한 산책자의 명상)에서 독자들은 삶과 죽음이 주인공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그가 읽은 책들을 통해서 비로소 알게 된다. 정기적으로 누군가에게 책을 발송하는 한 남자의 챕터(바스티앙_침묵의 메신저)에서는 그 책들이 주인공의 삶에 새겨놓은 흔적들이 짙은 감동으로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펼쳐 보이면서, 글쓴이는 독자들이 오래 기억할 만한 한마디를 남긴다. 책과 인간, 혹은 책과 삶의 관계를 드러내는 데 이보다 더 적절한 말은 달리 찾기 힘들 것이다.
“네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알려주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줄게.” (‘필립_지칠 줄 모르는 여행자’ 중)
오직 책방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
“서점은 아주 특별한 연결의 장소다!”
특출한 인물이나 복잡한 사건이 없는 대신, 이 작품에는 오직 ‘책방’이라는 공간에서만 가능한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서점이 아니었다면 절대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 서점이 아니었다면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 그리고 서점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다다를 수 없었을 놀랍고 아름다운 결말들! 서문을 써준 프랑스의 대문호 에릭 오르세나가 서점이라는 공간을 가리켜 특별한 ‘장소’라고 표현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서점은 무엇일까요? 그곳은 장소입니다. 빛과 열기의 장소, 공유와 신뢰의 장소, 유대감의 지리학. 연결의 장소.” (에릭 오르세나의 서문 중)
배경이 책방인 만큼 이 소설에는 수많은 책들이 등장한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문학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그 책들 중에는 국내에 번역된 것도 있지만 아직 소개되지 않은 책들도 많다. 원서의 맨 뒤에는 본문에 등장하는 책들의 목록이 실려 있는데, 번역본에서는 그 책들의 국내 출간 여부와 서지사항을 꼼꼼하게 덧붙여놓았다. 책장을 덮기 전에 각 챕터별로 어떤 책들이 등장했는지 되짚어보면 이 특별한 소설의 여운을 조금 더 짙게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 추천의 글
서점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주 특별한 은행입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돈을 거래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꿈을 꾸고 자유를 갈구합니다.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탐색하고 있는 아홉 명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소설은 그들이 책을 펼치는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매혹적으로 들려줍니다.
그곳은 장소입니다. 빛과 열기의 장소, 공유와 신뢰의 장소, 유대감의 지리학. 연결의 장소.
사람들이 책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반대 또한 진실입니다. 책이 없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초라하고 지루하고 단조로울까요? 오래되고 아름다운 위제라는 도시에, 아주 새로운 서점이 있었습니다.
(에릭 오르세나 | 프랑스 소설가)
■ 책 속으로
“이미 인쇄된 책장 위로 또 다른 이야기가 쓰였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포개졌다. 내가 쓰기로 결심한 것은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다.” (29쪽)
“책이 흘러가는 여정과 우리 자신의 여정이 겹치는 부분이 생기고, 그럴 때 우리는 만남을 갖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문득 그런 만남이 발생하는 순간이 존재한다. 따라서 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는 단지 읽었던 내용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61쪽)
“나는 삶이 잃어버렸던 색깔을 되찾는 데에 때로는 아주 사소한 것들, 혹은 몇 권의 책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녀에게 미소를 보냈다.”(68쪽)
“그럴 때면 나는 ‘인시피트 키스(incipit kiss)’라 부르는 독특한 순간을 경험한다. ‘incipit’는 라틴어로 한 작품의 첫 단어, 첫 구절을 뜻한다. 몇몇 책의 첫 구절은 정말로 걸작이다. 그러면 우리는 마치 모종의 신비로운 힘에 사로잡힌 것처럼 책 속으로 돌진하게 된다. 첫 구절 키스! 이것은 실제의 첫 키스와 다르지 않다. 짭짤하고, 달콤하고, 부드럽고, 씁쓸하고, 물렁물렁하고, 격렬하고, 반항적이고, 힘겹고, 도둑맞은 기분이고, 충격적이고, 감각적이고, 이국적이고, 차갑고, 포근하고, 생생하다.” (75쪽)
“네가 어떤 책을 읽었는지 알려주면, 네가 누구인지 말해줄게.” (120쪽)
“아버지는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마젤란의 전기를 읽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책과 함께 세상을 떠나신 것이다. 쇼몽의 루아르 강가에 위치한 정원에서, 간이 의자에 길게 누운 채로. (…) 사람들은 대개 부드러운 손동작으로 고인의 눈을 감긴다. 하지만 아버지의 눈을 감긴 것은 펼쳐진 책장이었다. 입관을 할 때까지 우리는 마젤란을 아버지의 얼굴 위에 그대로 두었다. 아버지가 슈테판 츠바이크와 대화를 계속 이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155쪽)
“몸에 닿지 않으면서도 피부의 솜털 하나하나를 곧추세우는 그의 손길을 나는 강하게 느끼고 있다. 나뭇잎이 공중에서 천천히 나부낀 후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손을 내 성기 위에 살포시 올리면서, 남자는 반쯤 벌어진 내 입을 응시하고 있다. 나는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허벅지를 살짝 벌린다. 내려앉은 나뭇잎을 더 잘 느끼기 위해서. 눈을 떴다…. 바스티앙이었다.” (188쪽)
“나의 평온한 세상에,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시간을 초월한 듯한 이 작은 마을에 갑자기 ‘8시 뉴스’에나 나오는 아프가니스탄이 등장했다. 들것에 실린 채 피를 흘리는 군인이 나의 서점 한가운데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248쪽)
“서점 주인이나 독자로서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책은 때로 항우울제보다 훨씬 탁월한 치유 능력이 있다. 삶에 대한 욕망을 일깨워주는 것은 약이 아니라 책이다.” (317쪽)
“모든 인간은 신성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나는, 인류의 백과사전을 한 장씩 계속 넘긴다는 기분으로, 길에서 마주치게 될 모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것이다. 누군가가 내 작은 서점의 문을 밀고 들어올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내일 아침에 서점 문이 열리면 철학하는 농부, 이집트의 조각가, 황무지에서 수맥을 찾는 사람, 혹은 러시아 왕자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내일 아침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334쪽)